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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울경 기고] 제조업 4차 산업혁명, 동종교배냐 이종교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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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울경 기고] 제조업 4차 산업혁명, 동종교배냐 이종교배냐

입력
2017.05.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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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업무 관계로 만난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 곤란을 당한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이런 엉성한 기억 구조에도 불구, 딱 한 번 만났을 뿐인데 영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한 사람이 있다. 그를 하노버 산업박람회장에서 만났다. 대기업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던 중 센서 개발에 마음이 꽂혀 이십여년 전 창업을 했고 온갖 고생 끝에 산업용 센서류를 개발, 6년째 하노버 산업박람회장에서 전시를 하는 분이다. 평균 성공률 5% 미만의 벤처 창업은 식구들을 고생시키고 본인도 온갖 어려움을 겪는 가시밭길이다. 이런 벤처 생태계에서 살아남은 그가 자랑스러웠다.

독일 하노버 산업박람회장은 우리나라 코엑스와 같은 전시장이 30개쯤 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독일 4차 산업혁명의 주제는 산업의 스마트화에 맞추어져 있다. 탄탄한 제조업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스마트화를 진행하는 것이다. 가상현실, 로봇기술, 무인자동차 기술 등은 크게 강조되지 않는다. 자기가 잘하는 분야를 스마트하게 바꾸는 것이 그들의 지향점이다. 그 곳에서 만났던 Y사장 같은 분이 대우받고 존중받는 건강한 생태계다.

한국의 제조업은 빠른 추종자 전략을 통해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했다. 적어도 3차 산업혁명의 시대에서 대한민국은 낙오자가 아니었다. 성공적으로 마라톤 선두대열에 끼어든 중간 진입자였다. 그러나 선두주자만 살아남을 수 있는 4차 혁명의 시대에 우리는 알파고가 나오면 딥러닝을 하고, 영화 아바타가 인기몰이를 하면 3D 가상현실에 매달린다. 아직도 빠른 추격자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대한민국은 이 냉엄한 4차 산업의 시대에 무엇을 해야 할까? 특히 나날이 경쟁력을 잃어가는 제조업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까? 모든 제품에 인공지능을 넣을까? 사물인터넷을 넣을까? 나는 그 답을 ‘리탈’이라는 전기, 제어용 패널을 만드는 독일의 강소기업에서 찾을 수 있었다.

세계 곳곳에 생산기지가 있고, 종업원이 1만명이 넘는 기업이지만 주식시장에 상장조차 하지 않은 가족기업이다. 엄청난 높이의 물류창고를 컴퓨터가 자동으로 제어하는 현장에 그들이 붙인 명칭은 ‘리탈 이노베이션 센터.’ 물건을 나르는 지게차에도 바코드 리더가 붙어 있고, 지게차 운전자는 모니터로 제품의 이동을 감시한다. 그들에게 4차 혁명의 혜택은 데이터를 지식으로 바꾸는 데서 시작된다. 이러한 기술은 알파고와 같이 쇼킹한 기술이 아니다. 이미 시장에서 쉽게 살 수 있는 기술이다. 요점은 이 기술을 그들의 공장에 내재화시켰다는데 있다. 철판을 자르고 접어서 산업용 캐비닛을 만들던 이 회사가 ‘이플랜’이란 전기제어용 소프트웨어와 통합했다. 캐드 프로그램으로 그리던 전기 도면을 이 제품으로 바꿔 그리면 치수가 생성되고, 자재목록이 자동 생성돼 운영과 정비에 사용할 수 있는 살아있는 지식이 된다. 이로써 그들은 전형적인 제조 기업을 지식을 관리하고 판매하는 가치혁신센터로 만들었다.

유전적 기술 중 동종교배와 이종교배가 있다. 독일 사람들의 ‘인더스트리 4.0’ 전략은 동종교배 전략이다. 그들은 ‘내가 잘하고 있는 분야, 잘 할 수 있는 일’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다. ‘스마트화’란 고객의 고부가가치까지 생각하는 제조업체의 생산과정 혁신을 멋지게 표현한 말이다. 텔레비전 교양 프로그램에서 터미네이터와 같은 휴머노이드를 얘기하고,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야 가능하다.

하지만 온 나라가 기존 제조업의 고도화는 제쳐두고, 새로운 기술이 지배하는 이종교배만 혁신인 듯 얘기하는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보다 현실적으로 침착하게 대응점을 설정하고, 동종교배 할 것인가, 이종교배를 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학계와 정부의 노력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한국전력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교수 정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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