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몰아주기 등 ‘사전 경고장’
전담할 ‘별동대 조직’ 구성 추진
“순환출자 문제는 현대차 그룹뿐”
서둘지 않고 단계적 개혁 나설 듯
“재벌개혁의 목적은 일자리 만들기”
무리한 재벌 옥죄기는 안 할 듯
재벌개혁 선명성 후퇴 지적엔
“말랑말랑해지지 않았다” 반박
‘재계 저승사자’ ‘재벌개혁 전도사’로 불려 온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문재인 정부의 초대 공정거래위원장에 내정되면서 재계의 관심은 온통 ‘김상조 공정위’의 향후 행보에 쏠려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는 18일 자신이 펼칠 정책 방향을 직접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4대 그룹(삼성ㆍ현대차ㆍSKㆍLG)에 대해 엄격하게 법 집행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전담할 ‘별동대 조직’도 조만간 구성할 계획이다.
“재벌 규제, 4대그룹 집중이 효과적”
김 내정자는 이날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범(汎) 4대 그룹이 30대 그룹 자산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어 이들에게 감독을 집중하는 게 효과적”이라며 “공정위는 법 집행에 광범위한 재량권을 갖고 있는 만큼 4대 그룹 관련 사안은 보다 엄격한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4대 그룹을 향해 일감 몰아주기,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공정거래 질서를 해치는 행위를 더 이상 하지 말라는 강한 ‘사전 경고’를 보낸 것이다. 한편으로 현재 부실 징후가 있는 중하위 그룹에 대해서는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는 규제보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조정이 우선 순위”라고 그는 강조했다.
엄격한 법 집행을 뒷받침하기 위해 12년 만에 ‘조사국’이 사실상 부활한다. 김 후보자는 “기업집단과를 기업집단국으로 확대해 공정위의 경제 분석ㆍ조사 능력을 정상화하겠다”며 “과거 조사국을 다시 부활시키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조사국은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시절 대기업의 부당 내부거래 조사를 전담했던 조직으로 한 때 ‘공정위의 중수부’로도 불렸지만 재계의 강한 반발에 밀려 2005년 말 폐지됐다. 이후 여러 국으로 분산됐던 기능을 12년 만에 다시 기업집단국으로 통합해 재벌 감시ㆍ조사의 ‘컨트롤타워’를 세우겠다는 뜻이다.
개혁의 현실성도 중요
김상조식 재벌개혁 드라이브의 또 다른 축은 ‘현실성’이다. 김 내정자는 이날 “순환출자 해소는 우선순위가 높은 과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가 대기업의 기존 순환출자를 3년 내 해소하는 공약을 제시했고, 더불어민주당도 그간 이를 계속 경제민주화의 핵심 과제로 삼아온 걸 감안하면 뜻밖이다. 그는 “5년 전 대선 당시 14개 그룹에 9만8,000개나 됐던 순환출자 고리가 지금은 7개 그룹 90개로 대폭 감소했다”며 “현재 순환출자가 총수 일가 지배권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곳은 현대차 그룹 하나 뿐”이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로선 순환출자 해소 추진 과정에서 갖가지 반발로 겪을 새 정부의 정치적 ‘난관’(비용)에 비해 정책적 이득이 크지 않다고 판단한 셈이다.
현재 현대차의 지배구조는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의 순환출자 구조다. 증권업계에서는 이런 순환출자 해소에 6조~6조5,000억원 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김 후보자의 언급에 향후 현대차의 지배구조 개선 작업이 빨라질 것이란 전망이 확산되면서 이날 현대차 주가는 전날보다 4.10%나 급등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새 정부에서 대기업 순환출자 해소는 ‘임기 내 단계적 해소’의 형태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 내정자는 향후 공정위의 활동이 무리한 재벌 옥죄기로 흐르지 않게 하겠다는 방침도 명확히 했다. 그는 “지난 20년간 시민단체 활동을 하며 재벌 해체를 이야기한 적이 한번도 없다”며 “한국경제의 소중한 자산으로 재벌이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유도하는 게 재벌 개혁”이라고 강조했다. 과거에 비해 재벌개혁의 ‘선명성’이 떨어졌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말랑말랑해지지 않았다”며 “분명히 얘기하지만 (재벌) 개혁에 관한 의지는 조금도 후퇴하지 않았다”고 적극 반박했다.
한편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전속고발권 폐지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전속고발권은 담합, 독점 등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에 대한 검찰 고발 권한을 공정위에만 부여하는 제도다.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담합 등 기업의 위법 행위로 피해를 입은 누구든지 자유롭게 검찰에 고발할 수 있다.
김 내정자는 “전속고발권 폐지는 공정위의 행정규율(과징금 등), 사적규율(민사소송), 검사의 형사규율(형사처벌) 등 보다 ‘큰 틀’에서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며 “향후 전속고발권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국회와도 긴밀하게 협의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소송 남발’에 따른 경영 위축 등 다양한 부작용이 불거질 수 있다는 현실적 부작용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재벌개혁도 목표는 일자리 창출”
임기 초반 김 내정자가 가장 중점적으로 살펴볼 사안은 서민경제다. 그는 “취임하면 초반에 집중하고 싶은 부분은 가맹점, 대리점과 골목상권 자영업자 등 서민 경제”라며 “앞으로 공정위가 행정력을 총동원해서 이 분야에 집중할 것”이라며 조만간 해당 분야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에 나설 계획을 밝혔다.
김 내정자는 이날 “제가 재벌 저격수 등으로 불립니다만 재벌개혁 자체가 목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대신 공정한 시장질서의 회복을 통한 경제활력 회복을 자신의 입각 목표로 제시했다.
그는 “10대 그룹의 직접 고용이 100만명 수준에 불과하며 국내 일자리 대부분은 중견ㆍ중소기업에서 창출된다”며 “중소기업과 서비스업 분야에서 좋은 일자리가 지금보다 더 많이 창출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재벌개혁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대기업의 ‘갑질’과 이에 따른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관계로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정체돼 있는 만큼, 공정위가 이에 개입해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 회복→중소기업 성장→일자리 창출’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게 그의 복안인 셈이다. 김 내정자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불투명한 지배구조로 인해 이제 누구도 한국을 ‘다이나믹 코리아’란 부르지 않는 상황이 만들어졌다”며 “공정위가 해야 할 일은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를 재확립해 한국 경제의 역동성을 다시 살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