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조각의 뼈로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남편인 고 고창석 단원고 교사가 세월호 참사 296번째 희생자로 돌아왔다는 소식에 아내 민동임(38)씨는 기자에게 보낸 한 통의 문자 메시지로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을 전했다. 남편을 기다리는 1,127일의 시간은 억겁의 세월이었다. 민씨는 “지금까지 남편의 의로운 행동에 누가 될까 싶어 늘 조심하며 살았다. 어린 자녀들이 있어 더욱 그랬다”면서 “가슴은 아프지만 훌륭한 남편, 아빠였다”고 말했다.
체육교사였던 고 교사는 참사 직후 제자들을 구하느라 3년이 지나서야 가족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운동신경이 남달랐던 그는 대학생 때 바다에서 인명구조를 배울 정도로 남을 구하는 일에 관심이 깊었다. 죽음이 엄습하는 순간에도 자신보다 제자 목숨이 우선이었다. 생존 학생들은 고 교사가 제자들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주며 “배에서 탈출하라”고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제자들은 고 교사를 ‘또치쌤’이라고 부르며 따랐다고 한다. 머리를 고슴도치처럼 왁스로 세운 모습 때문이었다. 그는 운동복 대신 늘 정장 차림을 즐길 정도로 반듯한 교사였다. 술, 담배 등 비행을 저지르는 학생들에게도 회초리를 들기 보단 다정한 경청으로 인도하려 했다. 혼내기는커녕 집이나 식당으로 학생들을 불러 따뜻한 밥을 먹이던 참교사였다고 유족들과 제자들은 전했다.
고 교사는 단원고 담장 너머에 있는 단원중 교사였던 아내 민씨에게도 지극정성이었다. 아내가 아침밥을 거르면 손수 간식거리를 마련해 건네줄 정도였다. 아내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는 미리 꽃을 준비하기도 했다. 부러울 것이 없는 잉꼬부부였다.
민씨는 참사 후 안산을 떠나 세월호에 가까이 있는 전남 모 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기고 남편을 기다려 왔다. 아이들에게 상처 될까 전전긍긍하며 미수습자 가족인 것을 숨기며 살아야만 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3주기를 앞둔 지난달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아프다, 슬프다는 표현조차 제대로 못 하고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가슴에 그 큰 상처를 묻어두었다”고 표현했다.
미수습자 가족들의 소원대로 민씨는 ‘유족’이 됐다. 남편은 미수습자 9명 중 가장 먼저 가족 품에 돌아왔지만 민씨는 반가운 마음을 마냥 드러낼 수는 없는 처지다. 지난 3년 간 인내의 시간을 함께 견뎌온 나머지 가족들도 가족의 소식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민씨는 “아직까지 수습되지 못한 가족들이 있어 경솔한 언행으로 다른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면서 본보의 인터뷰 요청을 극구 만류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교사 고창석에 대해 더 많이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다.
목포=박경우 기자 gwpark@hankookilbo.com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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