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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도]파란 눈의 한국인을 보는 시선

입력
2017.05.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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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권을 갖고 싶다.” 2012년부터 KBL(한국농구연맹)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외국인 선수 리카르도 라틀리프는 새해 첫 날 한국 농구계에 ‘솔깃한’ 발언을 했다. 신체 조건이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 농구에서 특별귀화는 핫이슈다.

한국은 2011년부터 국적법 개정으로 ‘체육분야 우수인재 특별귀화’가 정착하면서 스포츠 선수의 귀화 절차가 간단해졌다. 일반 귀화자와 달리 거주 기한이나 한국어 능력 등에서 한결 자유롭다. 국내외 공신력 있는 단체나 기관이 대한체육회에 추천하고, 대한체육회가 다시 법무부에 추천해 국적심의위원회 심사를 통과하면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다.

이를 통해 그 동안 다양한 종목의 선수가 귀화했는데 지난해 케냐 출신 마라토너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와 미국 출신 여자농구 선수 첼시 리가 ‘순풍’에 제동을 걸었다. 개인 종목이라는 특성상 충분한 명분을 얻지 못한 에루페는 정작 도핑테스트에 걸려, 첼시 리는 서류 위조가 발각돼 무산되면서 외국인 선수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덧입혔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다시 귀화 바람이 불었다. 엔트리 25명 중 6명이 귀화선수로 채워진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돌풍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백지선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지난 4월29일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팰리스 오브 스포츠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17년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남자 세계선수권 디비전1 그룹 A(2부리그) 최종전(5차전)에서 슛아웃(승부치기)까지 가는 혈투 끝에 우크라이나를 2대 1로 제압했다. 12연패 중이었던 카자흐스탄(5-2)을 비롯해 폴란드(4-2) 헝가리(3-1) 등을 연파한 한국은 카자흐스탄과 함께 승점 11점을 기록했지만 승자승에 앞서 2위로 ‘꿈의 무대’ 월드챔피언십(1부리그) 진출에 성공하면서 불모지에서 톱디비전으로 승격하는 기적을 썼다.

국내 귀화를 추진 중인 프로농구 서울 삼성의 외국인선수 리카르도 라틀리프. KBL(한국농구연맹) 제공
국내 귀화를 추진 중인 프로농구 서울 삼성의 외국인선수 리카르도 라틀리프. KBL(한국농구연맹) 제공

스포츠계에서 특별귀화를 통한 인재 수혈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국가적 자존심’과 ‘정서적 공감대’는 늘 충돌했다. 일각에서는 귀화 선수들의 ‘저의’를 의심하기도 한다. 특별 귀화는 이중국적이 가능하기 때문에 올림픽이 끝난 후 적당한 대가를 받고 그냥 자기 나라로 되돌아갈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 대다수가 한국 땅을 밟은 이유는 자국의 높은 경쟁률 때문이며 태극마크를 선택한 건 오랜 한국 생활을 통해 느낀 한국에 대한 순수한 애정 때문이다. 루지 강국인 독일의 여자 루지 유망주였던 아일렌 프리슈는 귀화를 선택한 뒤 “평창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한국 루지 발전을 위해 내가 갖고 있는 경험과 정보를 전수하며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바다가 없는 스위스는 세계 최고의 요트대회인 아메리카컵에서 2003년에 이어 2007년에도 우승하며 2연패를 달성했다. 17명으로 구성된 스위스팀은 12개국에서 모인 다국적팀이었다. 특히 선장 브래드 버터워스를 비롯한 주축선수 6명은 직전 대회에서 뉴질랜드에 우승을 안긴 주역이었다. 아메리카컵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처럼 엄격한 국적 규정이 없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누구도 스위스를 폄하하지 않았다.

프로농구 최고의 센터로 꼽히는 라틀리프가 귀화를 하면 높이의 열세 때문에 고전해왔던 대표팀에 천군만마가 될 것은 자명하다. 2020년 도쿄올림픽 본선 진출은 한국 남자 농구의 20년 숙원이다. 까만 피부의 선수가 태극마크를 달고 덩크슛을 내리꽂는 광경은 낯설 것이지만 백지선 감독의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피부색이나 눈 색깔이 다를지는 몰라도 내 눈에 그들은 모두 한국인”이라면서 “그들의 기량과 경험을 통해 국내 선수들도 그것을 보고 배우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경기를 보면 알겠지만, 지금은 귀화 선수들보다 국내 선수의 비중이 더 크다"고 말했다. 잃는 것만 생각했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시너지효과를 입증한 아이스하키의 성공을 통해 ‘파란 눈의 한국인’에 대한 색안경을 벗을 때가 됐다. 성환희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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