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 “사법행정 책임 통감”
이르면 내달 전국법관회의 열어 논의

대법원이 이르면 내달 전국 각급 법원의 판사들을 모아 사법개혁 방향에 대한 의견을 듣는다. 대법원이 전국의 판사들을 모아 법관회의를 여는 것은 2009년 신영철 당시 대법관의 촛불시위 사건 재판개입 의혹과 관련해 열린 이후 8년만이다. 전국의 판사들이 법원행정처의 사법개혁 논의 축소 의혹과 관련해 연이어 법관회의를 열고 대법원장의 입장 표명과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소집을 요구하자 양승태 대법원장이 직접 나서 판사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진화에 나선 것이다.
양 대법원장은 17일 법원 내부게시판을 통해 “각급 법원에서 선정된 법관들을 모아 진솔하고 심도 있게 토론할 수 있는 논의의 장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사법부 수장의 입장 표명은 지난 3월 사법개혁 논의 축소 의혹이 제기된 지 70여일 만이다.
양 대법원장은 “이 같은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고 사법행정을 운영함에 있어 법관들의 의견을 충실하게 수렴해 반영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며 “앞으로 사법행정의 방식을 환골탈태하기 위해 광범위하고 심도 깊은 논의를 통해 법관들의 다양한 시각과 의견을 취합하는 과정이 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 대법원장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 심의 결과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하겠다고도 했다.
앞서 법원 내 최대 학술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지난 2월 ‘사법독립과 법관인사 제도에 관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학술대회를 준비하던 중 법원행정처 고위 간부가 학술행사 축소를 압박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이후 이인복 전 대법관을 중심으로 꾸려진 조사위는 지난달 18일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의 이규진(55ㆍ사법연수원 18기) 전 상임위원이 학술행사 축소를 지시한 사법행정권 남용행위가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서울동부지법 등 일선 판사들이 잇따라 법관회의를 열어 대법원장 개입 여부와 판사 블랙리스트 존재 여부에 대한 조사가 미진했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급기야 15일에는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이 판사회의를 열어 양 대법원장의 입장 표명과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소집을 요청하기도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양 대법원장의 전국 법관회의 언급과 관련해 “이르면 6월 중에는 논의의 장을 마련할 계획이며 시기와 규모는 판사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법관회의는 각급 법원을 대표하는 1, 2명의 판사가 참여하는 방식이 될 전망이다.
판사들의 집단 행동은 과거 사법파동 이후 드물었다. 법원이 시국사건에 무죄를 선고한 뒤 판사들에게 보복 수사가 진행됐던 1971년과 김용철 대법원장이 퇴진으로 마무리된 1988년 전국 규모의 판사회의가 열렸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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