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 초여름, 프랑스 니스 해변의 현란한 풍광을 잊을 수 없다. 막 출범한 유럽연합(EU)의 사회상을 취재하다가 잠시 들른 바닷가. 10대 소녀부터 할머니까지 다양한 여성들이 가슴을 풀어헤치고 있었다. 누드비치가 아닌 일반 해변이었다. 여성도 남성도 시선이 자연스러웠다. 아마도 상반신 노출(토플리스)을 처음 감행한 여성은 뭇시선을 한몸에 받았을 게다. 공연음란죄로 체포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토플리스 여성이 점차 늘어나면 시선은 분산되게 마련이다. 대중탕 욕조에 몸을 담그듯 익명성 속에 육체를 감추는 것이다.
▦ 프랑스 사회학자 장 클로드 코프만은 2년간 현장조사를 통해 토플리스의 사회화 과정을 연구했다. 그는 “육체란 현실과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가장 명백한 증거”라고 했다. 노출 여성에게선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과 자존감을 높이려는 의식이 꿈틀댄다는 것이다. 특히 35~40세 여성의 토플리스 욕망이 가장 강했다. 삶에 대한 자신감과 젊음이 사라지는 아쉬움이 큰 탓이다. 노출이 심한 여성은 타인의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 심적 부담이 클 수밖에. 그래도 같은 차림이 많아져 오래 머물지 않는 시선이라면 부담이 덜하다.
▦ 노출의 계절이다. ‘시선 폭력’(남성이 불순한 의도가 담긴 눈빛으로 쳐다봐 정신적 피해를 주는 것)을 하소연하는 여성이 많다. 대학가에선 남녀 학생들의 설전도 벌어진다. 일부 여성학자는 “일방적이고 공격적으로 바라보는 남성들 시선 자체가 권력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여성 의지와 무관하게 특정 부위를 집요하게 훑고 어루만지는 남성의 시선은 폭력이요 성희롱이라는 것이다. 남성들은 본능적 시선의 자유까지 남녀 대립의 문제로 몰아가는 것은 지나치다고 반박한다.
▦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육체의 의미는 달라진다. 단순히 몸을 드러내는 네이키드(Naked)와 벗은 몸이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되는 누드(Nude)는 다르다. 코프만에 따르면 해변의 토플리스 여성과 이를 바라보는 남성 태도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 토플리스 여성이 걷거나 뛰는 건 금기다. 주로 앉거나 누워 있어야 한다. 남성은 쳐다 보되 슬쩍 한 번에 그쳐야 한다. 가슴을 ‘똑바로’ 쳐다보거나 한 여성을 ‘집중’해서 보면 안 된다. 한국 남성도 시선 관리법을 배울 때가 됐다. 다른 대상을 향하는 듯 슬쩍 쳐다보는 중립의 시선을.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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