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스 “가장 인상적 음식은 냉면”
박찬일 “이해하기 어려운 음식인데”
#2
부스 “1인 손님 거절은 한국뿐일 듯”
박 “점점 사라지는 문화예요”
#3
부스 “명동엔 크레이지 음식 많아”
박 “전통음식 아니라 외국인용”
요리하는 영국 작가와 글 쓰는 한국 셰프가 만났다. 프랑스 요리 학교 르 코르동 블루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 마이클 부스와 ‘로칸다 몽로’ ‘광화문 국밥’ 등을 운영하며 틈틈이 책을 내는 박찬일 셰프. 부스는 일본에서 ‘일본인보다 일본 음식을 더 잘 아는 외국인’으로 불린다. 이를테면 파란 눈의 백종원쯤. 오키나와부터 홋카이도까지, 가쓰오부시 공장부터 고추냉이 산지까지 찾아 다니며 쓴 ‘오로지 일본의 맛’이 대박이 나면서다. 부스는 책에서 빌 브라이슨과 무라카미 하루키를 섞어 놓은 듯한 예리한 통찰과 상쾌한 유머를 선보인다. 박 셰프가 “글을 그렇게 재미나게 쓰는 비법을 알려 달라”고 했을 정도다. 책은 최근 국내에 출간됐다.
부스는 한국 중국 일본의 애증 관계를 음식에서 풀어 내는 책을 쓰러 한국을 다녀갔다. 5월 초 열흘 동안 냉면과 떡볶이, 파전, 칼국수, 녹두빈대떡, 삼겹살, 순대, 호떡, 수육, 치킨, 소주, 막걸리를 용감하게 먹고 다녔다. 지금은 중국을 돌고 있다. 박 셰프가 호기심 많은 부스의 궁금증을 풀어 주는 취재원으로 나섰다. 두 사람은 9일 서울 세종로 한국일보에서 2시간30분 동안 맛 대담을 벌였다.
박찬일(박)=“가장 인상적인 한국 음식은 뭐였어요?”
부스=“냉면이요. 두 번이나 먹었어요. 물냉면보단 비빔냉면이 나았어요.”
박=“독특하네요. 냉면은 외국인 대상 설문조사에서 혐오하는 한국 음식 3위 안에 꼭 들어요. 차가워서 향을 발산하지 않고 맛의 포인트가 없으니 무슨 맛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거죠. 물냉면 국물이 행주 빤 물 같다는 사람도 있어요.”
부스=“메밀로 만든 국수에서 볶은 참깨처럼 고소한 맛과 광물질의 건강한 맛이 났어요. 저는 두부와 유바(두유를 가열할 때 표면에 응고되는 막을 말린 것)도 좋아합니다. 아무 맛이 없는 듯 하지만 풍부하고 섬세한 맛이 있어요.”
박=“냉면은 한국인이 울화가 치밀 때 찾아 먹는 음식이에요.”
부스=“진짜요?”
박=“최근 전직 대통령 때문에 냉면 판매량이 엄청 늘었어요(웃음). 평양냉면의 인기는 실은 미디어의 영향이죠. 워낙 이해하기 어려운 음식이라 그걸 잘 먹으면 스스로 미식가가 됐다고 내세우기도 하고요.”
부스=“한국인의 평양냉면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열흘 가까이 한국 음식만 먹었어요.”
박=“속이 좋지 않겠네요.”
부스=“네! (웃음)”
박=“일본 공항에 내리면 가쓰오부시와 다시마를 넣고 끓인 다시 냄새가 나요. 한국 냄새는 어때요?”
부스=“서울 냄새는 펑키(Funkyㆍ강렬하고 파격적인)해요. 좋은 냄새와 나쁜 냄새가 섞여 신기한 냄새가 나요.”
박=“퇴근 시간 지하철에선 삼겹살 냄새가 나죠.”
부스=“맡아 봤어요(웃음). 한국 음식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하이 임팩트(High-impactㆍ격렬한)’예요. 먹으면 몸이 즉각 반응해요. 역동적이고 즉흥적인 한국인을 닮은 것 같아요.”
박=“한국 음식 맛은 원래 강하지 않았어요. 삶이 고단한 한국인이 점점 더 매운 음식을 찾게 됐죠. 자극적 음식을 먹을 때 나오는 도파민 때문이라는 학설도 있어요.”
부스=“떡볶이도 그랬어요. 처음엔 달콤한 듯 하다가 먹을수록 고통스러웠어요. 그런데 금세 또 먹고 싶어지더라고요. 일본인은 맛이 강한 한국 음식을 좋아해요. 한국엔 일본 식당이 많고요. 상대 나라에서 만든 자동차는 별로 사지 않는데 음식은 달라요. 두 나라의 해묵은 감정을 풀어 주는 건 맛있는 음식뿐인 건가요?”
박=“밥 먹을 땐 과거를 생각하지 않으니까요(웃음).”
부스=“맞아요. 영국인들도 프랑스와 전쟁 중에 프랑스 음식을 먹었어요. 한국인은 음식을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먹는 것 같아요. 음식을 먹는 행위가 만들어내는 분위기 자체를 중시하고요. 1인분만 시킬 거면 식당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더군요. 혼자인 손님이 거절당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할 거예요.”
박=“혼자 밥 먹는 사람을 바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죠. 목적 없이 같이 밥 먹자고 하고 밥 사주는 일도 흔하고요. 그런 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요.”
부스=“광장시장에서 혼자 소주를 마셨어요. 혼자 잔에 따르려 할 때마다 옆 사람들이 소스라치며 놀라더군요. 절대 일어나면 안 될 일을 목격하고 있는 것처럼요(웃음).”
박=“실연 당한 외국인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부스=“다른 나라 요리사들은 자신이 정한 방식대로 음식을 먹어주기를 원해요. 한국에선 먹는 사람이 마음대로 하는 모습이 흥미로웠어요. 요리사가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나봐요.”
박=“한국인은 개성이 강해서 누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걸 싫어해요.”
부스=“일본인은 지시받는 걸 좋아하는데 한국인은 그렇지 않군요. 두 나라의 근본적 차이가 거기서 나오는 걸 수 있겠네요.”
박=“한중일 음식을 관통하는 건 쌀, 즉 밥입니다. 밥과 반찬을 합해 부르는 밥이 3국 음식 문화의 핵심이죠. 서양인에겐 어려운 개념이에요. 한국에 사는 이탈리아인 친구는 밥상에 앉으면 채소 반찬을 전채처럼 먹은 뒤 밥에 소금을 뿌려서 리조또처럼 먹어요. 서양식 퍼스트 코스죠. 생선이나 고기 반찬은 메인 요리로 그 다음에 먹고요. 친구 장모님이 난감해 하신다네요.”
부스=“솔직히 쌀밥은 지루해요. 정제된 흰 쌀은 영양 없고 살만 찌게 하죠. 많은 일본인이 인생 마지막 순간에 먹고 싶은 음식으로 따뜻한 쌀밥을 꼽는데 이해하기 어려워요. 일본에서도 쌀밥은 거의 먹지 않았어요. 한국에선 밥을 숟가락으로 떠서 국물에 적셔 먹더라고요. ‘아재 스타일’이라고 하던데, 마음에 들어요.”
박=“중국, 일본과 달리 한국 밥상에선 숟가락이 빠지지 않죠. 왜인지는 몰라요. 즐겨 먹는 잡곡밥이 찰기가 없어서라는 설도 있고, 국물 음식을 좋아해서라는 얘기도 있어요. 숟가락 미스터리도 취재해 보시죠.”
부스=“쇠젓가락이야말로 미스터리예요. 손가락으로 역도를 하는 것처럼 무겁고 아팠어요 (웃음).”
박=“나무젓가락 대신 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걸 만든 거죠.”
부스=“서울 명동에서 괴상한(Crazy) 한국 음식을 많이 봤어요. 특히 거의 모든 음식에 고무 맛이 나는 모짜렐라 치즈가 들어가더라고요.”
박=“명동 거리 음식은 전통 음식이 아니라 외국 관광객을 겨냥한 거예요. 김치는 어땠어요?”
부스=“극과 극이었어요. 굉장한 김치도 있었고, 끔찍한 김치도 있었고요. 한국에선 요즘도 집에서 김치를 만들어 먹나요?”
박=“그런 사람이 줄어들고 있죠. 김치는 한국의 자존심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한국인은 질 좋은 김치를 먹지 못하죠. 식당에서 주는 김치는 김치 맛 절임에 가까워요. 김치의 지역성도 희미해졌고요. 외식 산업이 김치를 덜 먹는 쪽으로 삶을 몰아가고 있어요. 좋은 김치를 못 먹는 삶은 결국 안정적인 삶이 아니죠.”
부스=“씁쓸하네요. 발효 음식이 뜨면서 영국에선 김치를 먹는 사람이 늘고 있어요. 전세계에서 음식의 근원을 다시 찾으려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어요. 한국 사찰 음식이 세계적 트렌드가 될 것이라 봅니다. 그런데 진짜 한국스러운 음식은 뭔가요?”
박=“국밥과 백반이죠. 다양한 반찬을 한 상에 펼쳐 놓고 먹는 인사동 식당에 꼭 가보세요.”
부스=“네!”(박 셰프가 추천한 한식당에서 부스는 1만2,000원짜리 한정식을 먹었다. 쌀밥이 싫다더니 밥 한 공기를 싹 비웠다. 드디어 밥맛에 눈 뜬 것일까.)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okilbo.com
오로지 일본의 맛
마이클 부스 지음
글항아리 발행ㆍ500쪽ㆍ1만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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