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한국 냄새는 펑키, 평양냉면 자부심 대단해요"

입력
2017.05.17 04:40
0 0

#1

부스 “가장 인상적 음식은 냉면”

박찬일 “이해하기 어려운 음식인데”

#2

부스 “1인 손님 거절은 한국뿐일 듯”

박 “점점 사라지는 문화예요”

#3

부스 “명동엔 크레이지 음식 많아”

박 “전통음식 아니라 외국인용”

최근 출간된 ‘오로지 일본의 맛’의 저자 마이클 부스와 ‘글 쓰는 셰프’인 박찬일 셰프가 9일 서울 세종로 한국일보 인터뷰실에서 ‘한국의 맛’을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최근 출간된 ‘오로지 일본의 맛’의 저자 마이클 부스와 ‘글 쓰는 셰프’인 박찬일 셰프가 9일 서울 세종로 한국일보 인터뷰실에서 ‘한국의 맛’을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요리하는 영국 작가와 글 쓰는 한국 셰프가 만났다. 프랑스 요리 학교 르 코르동 블루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 마이클 부스와 ‘로칸다 몽로’ ‘광화문 국밥’ 등을 운영하며 틈틈이 책을 내는 박찬일 셰프. 부스는 일본에서 ‘일본인보다 일본 음식을 더 잘 아는 외국인’으로 불린다. 이를테면 파란 눈의 백종원쯤. 오키나와부터 홋카이도까지, 가쓰오부시 공장부터 고추냉이 산지까지 찾아 다니며 쓴 ‘오로지 일본의 맛’이 대박이 나면서다. 부스는 책에서 빌 브라이슨과 무라카미 하루키를 섞어 놓은 듯한 예리한 통찰과 상쾌한 유머를 선보인다. 박 셰프가 “글을 그렇게 재미나게 쓰는 비법을 알려 달라”고 했을 정도다. 책은 최근 국내에 출간됐다.

부스는 한국 중국 일본의 애증 관계를 음식에서 풀어 내는 책을 쓰러 한국을 다녀갔다. 5월 초 열흘 동안 냉면과 떡볶이, 파전, 칼국수, 녹두빈대떡, 삼겹살, 순대, 호떡, 수육, 치킨, 소주, 막걸리를 용감하게 먹고 다녔다. 지금은 중국을 돌고 있다. 박 셰프가 호기심 많은 부스의 궁금증을 풀어 주는 취재원으로 나섰다. 두 사람은 9일 서울 세종로 한국일보에서 2시간30분 동안 맛 대담을 벌였다.

박찬일(박)=“가장 인상적인 한국 음식은 뭐였어요?”

부스=“냉면이요. 두 번이나 먹었어요. 물냉면보단 비빔냉면이 나았어요.”

박=“독특하네요. 냉면은 외국인 대상 설문조사에서 혐오하는 한국 음식 3위 안에 꼭 들어요. 차가워서 향을 발산하지 않고 맛의 포인트가 없으니 무슨 맛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거죠. 물냉면 국물이 행주 빤 물 같다는 사람도 있어요.”

부스=“메밀로 만든 국수에서 볶은 참깨처럼 고소한 맛과 광물질의 건강한 맛이 났어요. 저는 두부와 유바(두유를 가열할 때 표면에 응고되는 막을 말린 것)도 좋아합니다. 아무 맛이 없는 듯 하지만 풍부하고 섬세한 맛이 있어요.”

박=“냉면은 한국인이 울화가 치밀 때 찾아 먹는 음식이에요.”

부스=“진짜요?”

박=“최근 전직 대통령 때문에 냉면 판매량이 엄청 늘었어요(웃음). 평양냉면의 인기는 실은 미디어의 영향이죠. 워낙 이해하기 어려운 음식이라 그걸 잘 먹으면 스스로 미식가가 됐다고 내세우기도 하고요.”

부스=“한국인의 평양냉면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열흘 가까이 한국 음식만 먹었어요.”

박=“속이 좋지 않겠네요.”

부스=“네! (웃음)”

박찬일 셰프가 “한국인은 울화가 치밀 때 차가운 평양냉면을 먹는다”고 하자 마이클 부스의 눈이 커졌다. 부스는 가장 인상적인 한국 음식으로 냉면을 꼽았다. 게티이미지뱅크
박찬일 셰프가 “한국인은 울화가 치밀 때 차가운 평양냉면을 먹는다”고 하자 마이클 부스의 눈이 커졌다. 부스는 가장 인상적인 한국 음식으로 냉면을 꼽았다. 게티이미지뱅크

박=“일본 공항에 내리면 가쓰오부시와 다시마를 넣고 끓인 다시 냄새가 나요. 한국 냄새는 어때요?”

부스=“서울 냄새는 펑키(Funkyㆍ강렬하고 파격적인)해요. 좋은 냄새와 나쁜 냄새가 섞여 신기한 냄새가 나요.”

박=“퇴근 시간 지하철에선 삼겹살 냄새가 나죠.”

부스=“맡아 봤어요(웃음). 한국 음식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하이 임팩트(High-impactㆍ격렬한)’예요. 먹으면 몸이 즉각 반응해요. 역동적이고 즉흥적인 한국인을 닮은 것 같아요.”

박=“한국 음식 맛은 원래 강하지 않았어요. 삶이 고단한 한국인이 점점 더 매운 음식을 찾게 됐죠. 자극적 음식을 먹을 때 나오는 도파민 때문이라는 학설도 있어요.”

부스=“떡볶이도 그랬어요. 처음엔 달콤한 듯 하다가 먹을수록 고통스러웠어요. 그런데 금세 또 먹고 싶어지더라고요. 일본인은 맛이 강한 한국 음식을 좋아해요. 한국엔 일본 식당이 많고요. 상대 나라에서 만든 자동차는 별로 사지 않는데 음식은 달라요. 두 나라의 해묵은 감정을 풀어 주는 건 맛있는 음식뿐인 건가요?”

박=“밥 먹을 땐 과거를 생각하지 않으니까요(웃음).”

부스=“맞아요. 영국인들도 프랑스와 전쟁 중에 프랑스 음식을 먹었어요. 한국인은 음식을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먹는 것 같아요. 음식을 먹는 행위가 만들어내는 분위기 자체를 중시하고요. 1인분만 시킬 거면 식당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더군요. 혼자인 손님이 거절당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할 거예요.”

박=“혼자 밥 먹는 사람을 바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죠. 목적 없이 같이 밥 먹자고 하고 밥 사주는 일도 흔하고요. 그런 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요.”

부스=“광장시장에서 혼자 소주를 마셨어요. 혼자 잔에 따르려 할 때마다 옆 사람들이 소스라치며 놀라더군요. 절대 일어나면 안 될 일을 목격하고 있는 것처럼요(웃음).”

박=“실연 당한 외국인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한국 음식과 한국 문화를 설명하는 박 셰프의 얘기를 마이클 부스가 유심히 듣고 있다. 류효진 기자
한국 음식과 한국 문화를 설명하는 박 셰프의 얘기를 마이클 부스가 유심히 듣고 있다. 류효진 기자

부스=“다른 나라 요리사들은 자신이 정한 방식대로 음식을 먹어주기를 원해요. 한국에선 먹는 사람이 마음대로 하는 모습이 흥미로웠어요. 요리사가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나봐요.”

박=“한국인은 개성이 강해서 누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걸 싫어해요.”

부스=“일본인은 지시받는 걸 좋아하는데 한국인은 그렇지 않군요. 두 나라의 근본적 차이가 거기서 나오는 걸 수 있겠네요.”

박=“한중일 음식을 관통하는 건 쌀, 즉 밥입니다. 밥과 반찬을 합해 부르는 밥이 3국 음식 문화의 핵심이죠. 서양인에겐 어려운 개념이에요. 한국에 사는 이탈리아인 친구는 밥상에 앉으면 채소 반찬을 전채처럼 먹은 뒤 밥에 소금을 뿌려서 리조또처럼 먹어요. 서양식 퍼스트 코스죠. 생선이나 고기 반찬은 메인 요리로 그 다음에 먹고요. 친구 장모님이 난감해 하신다네요.”

부스=“솔직히 쌀밥은 지루해요. 정제된 흰 쌀은 영양 없고 살만 찌게 하죠. 많은 일본인이 인생 마지막 순간에 먹고 싶은 음식으로 따뜻한 쌀밥을 꼽는데 이해하기 어려워요. 일본에서도 쌀밥은 거의 먹지 않았어요. 한국에선 밥을 숟가락으로 떠서 국물에 적셔 먹더라고요. ‘아재 스타일’이라고 하던데, 마음에 들어요.”

박=“중국, 일본과 달리 한국 밥상에선 숟가락이 빠지지 않죠. 왜인지는 몰라요. 즐겨 먹는 잡곡밥이 찰기가 없어서라는 설도 있고, 국물 음식을 좋아해서라는 얘기도 있어요. 숟가락 미스터리도 취재해 보시죠.”

부스=“쇠젓가락이야말로 미스터리예요. 손가락으로 역도를 하는 것처럼 무겁고 아팠어요 (웃음).”

박=“나무젓가락 대신 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걸 만든 거죠.”

박찬일 셰프가 추천한 서울 인사동 한식당에서 한정식을 맛보는 마이클 부스. 글항아리 제공
박찬일 셰프가 추천한 서울 인사동 한식당에서 한정식을 맛보는 마이클 부스. 글항아리 제공

부스=“서울 명동에서 괴상한(Crazy) 한국 음식을 많이 봤어요. 특히 거의 모든 음식에 고무 맛이 나는 모짜렐라 치즈가 들어가더라고요.”

박=“명동 거리 음식은 전통 음식이 아니라 외국 관광객을 겨냥한 거예요. 김치는 어땠어요?”

부스=“극과 극이었어요. 굉장한 김치도 있었고, 끔찍한 김치도 있었고요. 한국에선 요즘도 집에서 김치를 만들어 먹나요?”

박=“그런 사람이 줄어들고 있죠. 김치는 한국의 자존심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한국인은 질 좋은 김치를 먹지 못하죠. 식당에서 주는 김치는 김치 맛 절임에 가까워요. 김치의 지역성도 희미해졌고요. 외식 산업이 김치를 덜 먹는 쪽으로 삶을 몰아가고 있어요. 좋은 김치를 못 먹는 삶은 결국 안정적인 삶이 아니죠.”

부스=“씁쓸하네요. 발효 음식이 뜨면서 영국에선 김치를 먹는 사람이 늘고 있어요. 전세계에서 음식의 근원을 다시 찾으려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어요. 한국 사찰 음식이 세계적 트렌드가 될 것이라 봅니다. 그런데 진짜 한국스러운 음식은 뭔가요?”

박=“국밥과 백반이죠. 다양한 반찬을 한 상에 펼쳐 놓고 먹는 인사동 식당에 꼭 가보세요.”

부스=“네!”(박 셰프가 추천한 한식당에서 부스는 1만2,000원짜리 한정식을 먹었다. 쌀밥이 싫다더니 밥 한 공기를 싹 비웠다. 드디어 밥맛에 눈 뜬 것일까.)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okilbo.com

오로지 일본의 맛

마이클 부스 지음

글항아리 발행ㆍ500쪽ㆍ1만8,500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