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럿이 함께 외국 여행을 하다 보면 종종 먹는 일로 의견 충돌이 생기곤 한다. 반드시 현지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쪽과 가끔 김치를 먹어줘야 똥을 싼다는 쪽. 나는 전자다. 김치며 고추장이며 라면 따위가 전혀 그립지 않다. 무엇이든 기꺼이 잘 먹고 잘 싸고 잘 잔다. 그래서인지 현지에서 한국 음식점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을 마주하면, 그냥 늙은이 취급을 해버리고 만다.
오래 전 여럿이 스페인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러 슬슬 한국 음식 생각이 나기도 할 무렵. 아니나 다를까 일행 하나가 현지 한국 음식점 타령을 하더니,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알아보니 어쩌느니 별 궁리를 다하고 있었다. 나는 스페인 별미라고 알려진 꼬치니요 아사도를 꼭 먹어봐야겠다고 주장하고 있던 참. 대사관이 여행객에게 한식당 알려주는 한가한 곳이냐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꼬치니요 아사도(cochinillo asado)는 말 그대로 새끼 돼지 구이다. 뱃속에 있는 새끼는 아니고, 생후 2주에서 한 달 사이의 새끼 돼지를 화덕에 구워 먹는다. 종잇장처럼 얇고 바삭하게 구워진 껍질과 부드럽기 그지없는 속살. 얼마나 부드러운지 접시로 고기를 잘라준다는 소리도 들었다. 어찌 그 맛이 궁금하지 않겠는가. 그 어린 돼지를 잡아먹는다는 약간의 죄스러움만 뒤로 한다면 반드시 맛보아야 할 궁극의 맛 중의 하나가 아니겠는가, 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쨌거나 그날 메뉴는 꼬치니요 아사도로 당첨. 숙소에서 소개를 받아 택시를 타고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식당을 찾아갔다. 소문대로 맛은 기가 막혔다. 그렇게 바삭하고 고소한 돼지껍데기는 처음이었다. 살은 입에서 살살 녹았다. 돼지 누린내? 그런 단어가 있었나 싶게 그냥 향긋했다. 그런데도 어쩐지 포크가 자꾸 멈칫거리게 되었다. 그 음식이 나온 순간부터 압도당했으므로.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귀며 코며 젖꼭지며 발톱까지 그대로 있는 새끼 돼지 한 마리를 우리가 나눠 먹고 있었으므로. 맛을 본다는 게 대체 뭐라고. 범죄에 가담한 공범자들처럼 우리는 묵묵히 혹은 과장되게 새끼 돼지 한 마리를 해치웠다.
거기까지만 해도 괜찮았을 것이다. 새끼 돼지는 이미 우리 뱃속에 들어가 있었으니까. 증거는 사라지고 이제 범행 현장만 벗어나면 끝. 그런데 뒤늦게 식당 내부에 있는 냉장 쇼케이스를 보게 된 것이 문제였다. 쇼케이스에는 아직 구워지지 않은 생 돼지가 네 다리를 활짝 벌리고 입가에 미소를 띠운 채 누워 있었다. 분홍빛의 아주 작은 귀엽고 처량한 새끼 돼지. 내가 저걸 먹었단 말이지.
결국 우리는 약간의 체기를 가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 중에서 가장 심하게 체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밤새 토하고 설사하고 진을 빼다가 다음날까지 회복이 안 돼 혼자 숙소에 남았다. 나갔던 일행들이 돌아오면서 기념품 몇 가지와 약을 챙겨왔다. 그들은 내 상태를 살피고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 음식점 하나를 찾아냈는데, 우리는 거기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당신은 아무래도 조금 더 쉬어야 할 것 같으니 그냥 있으라. 당신은 한국 음식점 가는 거 싫어하니까! 우리가 오면서 먹을 만한 다른 걸 사다 주겠다.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하라.
여행지에서 하루 종일 누워 자빠져 있던 것도 서러운데 먹는 것까지. 애써 찾아 먹지 않겠다는 것뿐이지, 기회가 되는데 굳이 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대사관 업무 어쩌구 하며 화를 냈던 것이 있어 나도 가겠노라고 못하겠고, 눈 앞에 음식들이 휙휙 지나가며 입에 침이 고였다. 염치고 뭐고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며 신심을 다해 말했다. “거기 누룽지나 뭐 그런 게 있을까? 그거 먹으면 속이 좀 나아질 거 같기도 하고.” 그날 나는 늙은이처럼 숟가락 등으로 된장 국물을 찍어가며 물에 만 밥을 먹었다. 전날 먹은 꼬치니요 아사도가 눈에 다시 아른거렸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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