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의 사법개혁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국내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 판사들이 15일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대법원의 사법개혁 저지 의혹과 관련해 ‘전국법관대표회의’ 개최를 요구했다. 지난달 말 서울동부지법을 시작으로 전국 18개 법원 가운데 12개 법원이 판사 모임을 갖고 동일한 요구를 했다. 과거 네차례에 걸쳐 사법부의 독립보장과 개혁을 요구하며 일어났던 소장 판사들의 집단행동인 ‘사법파동’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법원 내 최대 학술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지난 3월 초 전국 법관을 상대로 사법개혁 설문조사를 진행하면서 촉발됐다. 이 과정에서 대법원 간부가 학술대회 연기와 축소 압박을 가한 사실이 밝혀졌고, 여기에 ‘판사 블랙리스트’의혹까지 불거졌다. 대법원이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블랙리스트 조사 부실과 책임 규명 불분명으로 판사들의 불만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법부 수장인 양 대법원장이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으면서 법원 안팎의 비판이 커지는 양상이다.
서울중앙지법 판사들이 결의문에서 밝혔듯이 이번 파문은 “헌법적 가치인 법관의 독립이라는 관점에서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심각한 사태”다. 판사들의 자유로운 학술 활동을 통제한 것은 명백한 사법행정권의 남용이 아닐 수 없다. ‘대법원장의 친위조직’인 법원행정처가 법관들을 통제할 경우 법관들은 자연스럽게 타성에 젖은 관료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사법부의 관료화와 서열화 고착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한 헌법조항의 유명무실화 우려를 낳는다.
법관의 집단행동은 양 대법원장 취임 이후 대법원의 보수성과 폐쇄성이 강화됐다는 평가와 무관치 않다. 지난해 공개된 법원직원 3,000명의 고위법관 다면평가에서 양 대법원장은 100점 만점에 39점을 기록했고, 행정ㆍ입법권에 대한 견제에서 34점으로 최하점을 받았다. 우리나라 사법 신뢰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33위로 꼴찌권이다. 판사들의 전국법관 대표회의 소집 요구는 사법부 독립과 법관 독립이 핵심인 사법개혁을 통해 국민 신뢰를 되찾자는 몸부림이다.
양 대법원장은 더 이상 침묵하지 말고 이번 사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전국법관회의를 통한 사법개혁 대토론 요구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오는 9월 임기 만료를 앞둔 지금이 오히려 대법원장 인사권과 법원행정처 권한 축소 등 사법제도를 공론화하기에 적절한 시점이다. 양 대법원장의 적극적 대응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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