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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학부모 우울증

입력
2017.05.1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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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바뀌니 사람들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여전히 우울하다. 교육도 달라지겠지만 피부에 와 닿는 희망이 없다.

누리과정 국가지원,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 대학등록금 경감 등의 정책이 실현되면 교육비 부담이 얼마나 줄어들까? 외고ㆍ자사고ㆍ국제고가 모두 일반고가 되면 아무 고등학교나 보내도 될까? 초ㆍ중학교에 일제고사가 사라지고 학생부와 수능 성적을 절대평가로 바꾸면 성적 걱정을 안 해도 될까? 자유학기제를 확대하고 고교 학점제를 도입하여 특기ㆍ적성교육을 대폭 강화하면 진로 불안이 사라질까? 사교육 유발요인이 큰 수시의 논술과 특기자 전형을 폐지하고 학생부교과와 종합 그리고 수능전형으로 단순화하면 대입 부담이 정말 줄어들까?

안타깝게도 나는 모두 비관적이다. 정부는 국민의 교육비 부담을 크게 줄였다고 홍보하겠지만 개인 부담 공교육비에 국한된 것이고 사교육비 부담을 실제로 줄일 수 있는 정책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고등학교 서열을 없앴다고 홍보하겠지만 학원가에 떠도는 지역별 입시 명문고 서열 때문에 여전히 고등학교 선택에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시험부담과 성적경쟁이 크게 완화되었다고 홍보하겠지만 학원에서 출제한 문제를 놓고 계속 경쟁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본격적으로 진로교육을 한다고 홍보하겠지만 공교육이 소홀히 하는 입시에 더 매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입시 부담이 크게 줄었다고 홍보하겠지만 변별력이 떨어진 입시자료를 보완하기 위해 더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의 교육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직시해야 한다. 지금 학부모들은 공교육만 믿고 아이를 맡기면 사실상의 방치라고 생각한다. 사교육 효과를 아이가 누릴 수 있도록 경제력과 정보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부모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이 있으니 사교육에 우호적인 학부모문화를 주도하는 사람들이다. 상류층 학부모들은 기회는 평등하지 않기를 바란다. 보다 유리한 기회를 잡기 위해 온갖 편법을 쓴다. 과정은 공정하지 않기를 바란다. 조금이라도 특혜를 누리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결과는 정의롭지 않기를 바란다. 특권을 지키기 위해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좌지우지하기 어려운 공교육을 제치고 돈만 있으면 되는 사교육을 무기로 기득권을 대물림 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따라서 사교육을 직접 규제하지 않는 한 대통령이 약속한 평등, 공정, 정의는 실현될 수 없다. 그런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기에 우울할 수밖에. 사교육비를 마음껏 써 격차를 벌리는 그들을, 사교육비를 쥐어짜내 힘겹게 따라가야 하는 처지인데 공교육을 살려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니 한숨만 나온다. 사교육비 때문에 부모로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학원에 안 보내도 불안하지 않도록 특단의 사교육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다른 공교육 살리기 정책들도 좌초할 것이다.

이제 남은 기대는 ‘국가교육회의’다. 전문가 주도가 아닌 학부모를 존중하는 구성이 돼야 한다. 지금처럼 사교육에 우호적인 여론상황에서, 사교육을 무기로 쓰는 소수가 아닌 사교육 때문에 고통 받는 다수 학부모들의 민심을 제대로 담아내야 시장을 사수하려는 사교육 진영의 공세를 이겨낼 수 있다. 결국 가정이 화목해져 학부모 우울증 치료에 성공해야 이번 정권은 성공한다. 사교육 때문에 삶의 질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구체적으로 안다면 수긍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기우가 있으니 사교육 관련 인사들이 정권 주변에서 얼쩡거리지 않기를. 제발 이번 정권에서는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사교육을 확실히 잡아 개인 경쟁력을 위한 교육 일변도에서 벗어나 민주시민교육이 제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나라다운 나라가 이어지지 않겠는가.

박재원 학부모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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