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자아 자체가 ‘을’입니다.”
면접관들에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왔지, 인생을 걸긴 무슨 인생을 거냐”라며 외쳤던 신입사원 은호원(고아성)이 발랄한 20대로 다시 돌아왔다. 이 시대 “‘을’들을 위로”한 MBC 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 출연은 그에게 값진 경험이었다. 16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고아성(25)은 “나도 ‘을’의 부당함을 겪은 경험이 있어 감정이입을 했다”고 말했다.
고아성은 “은호원 역할을 연구할 때 식탁 위까지 올라와서도 죽지 못하고 팔딱 뛰는 생선 이미지를 생각했다”고 했다. “직장에 갓 입사한 비정규직 신입사원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연기하면서 제가 겪었던 ‘을’의 경험을 떠올리며 누구나 지니고 있을 ‘을’의 아픔을 깨우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자체발광 오피스’는 계약직 신입사원이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난 후 ‘슈퍼 을’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렸다. 할 말을 못 하고 사는 수많은 ‘을’을 대변하는 ‘사이다 발언’으로 대리만족을 선사했다. “나도 고시원 살면서 알았다. 손바닥만한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 값이 7만원쯤 한다는 거” 등의 대사는 유쾌하면서도 씁쓸한 공감을 자아냈다.
고아성이 생각한 이 드라마의 최종 목표는 “세대 공감”이다. 사회초년생뿐만 아니라 “대리, 과장, 부장의 공감까지 얻었다면 성공”이라는 것이다. 그는 “시청자들이 현실적인 공감을 넘어 판타지를 원하는 것 같다. 속 시원한 대사를 어떻게 균형 있게 표현할 것인지 논의를 많이 했다”며 “사회초년생 친구들에게 잘 보고 있다는 연락이 많이 왔다”고 말했다.
고아성은 작품 안에서 유독 ‘을의 인생’을 살았다. ‘오피스’에서 인턴사원 이미례 역을 맡아 정직원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하는 모습을 연기했고,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서는 사회 부조리와 싸우는 10대 임산부 서봄 역을 연기했다. 고아성은 “‘을’은 주변에 많은 듯하지만 결코 연기에 반영할 기본 모델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역할은 아니다”며 “평소 주변 사람들의 특성을 관찰하고는 하는데, ‘아 저런 인물을 연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3시간 분량을 만드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개성 있는 역할로 숨겨왔던 끼를 마음껏 펼칠 수 있어” ‘자체발광 오피스’가 고아성에겐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는 시즌2 욕심까지 내비쳤다. “현장에서 배우들과 얘기했어요. 암에 걸린 도기택(이동휘)이 수술에 성공하고 다른 인물들이 직급이 올라가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그림이요. 이런 얘기들을 시즌2에서 엮어나간다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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