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5.17
지난해 말 개봉된 영화 ‘러빙’은 연인이던 흑인 밀드레드 러빙(1939~2008)과 백인 리처드 러빙이(1933~1975) 법적 결혼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주 정부를 상대로 싸운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였다. 인종 간 결혼이 불법이던 고향 버지니아를 떠나 1958년 워싱턴 D.C에서 결혼한 둘이 고향에서 추방된 뒤 벌인 소송 이야기. 연방대법원이 “인종이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이유가 될 순 없다”며 버지니아의 인종 간 결혼 금지법을 만장일치 위헌 판결한 것은 1967년이었지만, 마지막까지 버티던 앨라배마 주가 저 법을 폐지한 것은 불과 17년 전인 2000년이었다. 저 법이 제정된 게 1600년대이니, 미국의 인종간 결혼이 온전히 합법화하는 데는 약 400년이 걸린 셈이다.
뉴욕의 흑인 노예 반란이 일어난 건 1712년이었고, 해리엇 비처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출간된 건 1852년이었다. 링컨이 노예해방을 선언한 건 남북전쟁 중이던 1863년이었고, 수정헌법 13조(노예제ㆍ강제노역 금지)가 발효된 건 2년 뒤였다. 첫 반란으로부터 약 150년 만이었다.
미국 자유당이 대선공약에 ‘여성참정권’ 조항을 삽입한 게 1844년이었고, 뉴욕의 페미니스트들이 ‘세네카 폴스 컨벤션’에서 참정권 청원집회를 연 것도 그 해였다. 미국 헌법이 여성 참정권(수정헌법 19조)을 수용한 것은 약 80년 뒤인 1920년이었다.
2003년 11월 18일 매사추세츠 주 대법원이 미국 최초로 동성결혼 허용 판결을 내렸고, 2004년 5월 17일(오늘) 동성혼이 합법화됐다. 4년 뒤 캘리포니아 주를 시작으로 법원 판결과 의회 입법, 주민투표 등을 통해 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주들이 늘어났다. 보수 기독교계와 공화당 보수 정치인들의 거센 저항과 조지 W. 부시의 ‘결혼보호법(DOMA)’ 등의 퇴행을 뿌리치고 미 연방 대법원이 동성혼 법제화를 선언한 것은 2015년 6월이었다. 1969년 스톤월 항쟁서부터 치면 46년 만이고, 법제화의 첫 물꼬가 열린 때부터는 12년 만에 이룬 성취였다.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이달 초, 무려 대선 후보들이, 무려 TV토론에 나와, 동성혼 반대도 아닌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서슴없이 말했다. 곧 쓰여질 한국 성소수자 인권운동 진전의 역사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었다. 올해 제18회 퀴어축제는 7월 15일 서울광장에서 시작된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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