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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갈등 리포트] 베이비박스, ‘생명의 상자’인가 ‘영아유기 조장 불법시설’인가

입력
2017.05.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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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락 목사가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공동체에서 지난 2일 베이비박스를 열어 보이고 있다. 배우한기자bwh3140@hankookilb.com
이종락 목사가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공동체에서 지난 2일 베이비박스를 열어 보이고 있다. 배우한기자bwh3140@hankookilb.com

서울시 관악구 난곡동의 우림시장에서 관악산으로 향하는 가파른 골목길을 굽이굽이 오르면 눈 여겨 보지 않았다간 지나치기 십상인 3층짜리 아담한 교회 건물이 나타난다. 건물 왼쪽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교회 2층 외벽에 도착하는데 2009년 12월 설치돼 뜨거운 사회적 논란을 일으켜 온 ‘국내 1호 베이비박스’가 여기 마련돼 있다. 베이비박스 손잡이 위엔 ‘불가피하게 키울 수 없는 장애로 태어난 아기와 미혼모 아기를 유기하지 말고 아래 손잡이를 열고 놓아주세요’라는 안내문이 적혀있다. 문을 열면 나타나는 가로 45㎝, 세로 70㎝, 높이 60㎝의 작은 상자를 거쳐간 아이만 지금까지 1,149명. 같은 수의 미혼모 미혼부들은 각자의 ‘불가피’한 사정을 안고 긴 고민 끝에 손잡이를 돌렸을 것이다.

오늘도 아이 울음 소리 가득

이곳에 베이비박스를 만든 이종락(63) 목사는 “교복 상의로 갓난 아이를 감싸고 하혈을 하는 채로 맨발로 찾아오는 청소년 미혼모, 아이를 파묻으려다 마음을 돌려 흙투성이인 아이를 안고 오는 엄마와 같이 비참한 사연이 차고 넘친다”고 말했다.

기자가 찾은 지난 2일, 주사랑공동체교회에서는 여전히 아기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베이비박스 옆에 마련된 영아 보호실에선 자원봉사자 두 명이 미숙아 한 명을 포함한 영아 다섯 명을 돌보고 있었다. 가장 최근 들어온 아이는 사흘 전(4월 29일)에 들어온 남자 아이로 고등학교 2학년 미혼모가 두고 갔다고 했다. 이중 아이 셋은 다행히 친부모가 마음을 돌려 다시 아이를 찾아가기로 한 운이 좋은 경우다. 나머지 두 아이는 각각 친부모의 출생신고 동의 여부에 따라 보육원(출생신고 안함)과 입양(출생신고 함) 행이 결정됐다.

이렇게 베이비박스가 아이를 구하는 생명의 도구라는 점은 쉽게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영아 유기를 조장하는 불법시설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베이비박스 도입 7년여 간 이런 찬반 양론은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국내 1호 베이비박스의 탄생 배경은

이종락 목사는 “베이비 박스는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교회가 오갈 데 없이 병원에 방치된 장애인 아동들을 보살핀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교회 주변에 영아를 갖다 놓기 시작했는데, 버려진 영아가 혹시 뒤늦게 발견되면 아이의 생명이 위태롭겠다는 생각이 들어 베이비박스를 만들기로 했다”고 말했다.

교회 벽 한쪽을 뚫어 안쪽으로 영아 보호용 상자를 달아두고 바깥과 안쪽에 각각 문을 달았다. 상자 안에는 영아의 체온 보호를 위한 온열 장치와 담요, 폐쇄회로(CC)TV 등을 설치했다.

베이비박스에 아이가 들어오면, 교회 직원 한 명은 아이를 거두고 나머지 한 명은 아이를 데려온 부모를 만나 상담을 진행한다. 친부모가 아이를 다시 데려가도록 권유하고, 그래도 어렵다고 하면 교회가 경찰에 유기아동 발생 신고를 한다.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관악구청은 매주 두 번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영아들을 모아 서울 시립어린이병원에서 건강검사를 받게 한다. 이후 아이들은 서울시 아동복지센터를 거쳐 보육원으로 가서 시설에서 자라거나 입양기관을 거쳐 입양 보내진다. 다만 ‘조만간 다시 아이를 찾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힌 부모의 아이들은 교회가 최장 6개월까지 맡아 길러 준다.

베이비박스는 언론을 통해 미담 사례로 보도되며 이름을 알렸고, 2015년엔 미국인 감독이 이종락 목사와 베이비박스를 다룬 ‘드롭박스’라는 제목의 영화를 찍기도 했다. 2014년 5월에는 경기 군포시 새가나안교회가 국내 2호 베이비 박스를 만들었는데, 두 곳에 들어온 영아는 지금까지 1,200명이 넘는다.

현행법 위반 논란은 여전

베이비박스를 두고 현행법 위반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형법은 영아 유기 행위를 2년 이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한다. 타인이 저지르는 범행의 편의를 제공하는 ‘방조’ 행위 역시 처벌 대상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인권위원회가 지난해 ‘베이비박스는 영아유기죄를 조장ㆍ방조하는 위법한 공간에 불과하며 아동복지법이 정한 (아동복지시설의) 최소한의 신고요건도 갖추지 못한 불법 시설’이라고 지적한 것은 이 때문이다.

반면 교회 측은 부모에게 아이를 다시 데려가도록 최대한 설득하므로 방조나 조장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종락 목사는 “설득을 거치면 30% 가까운 친부모는 다시 아이를 되찾아 간다”면서 “친부모가 직접 기르겠다고 하면 3년간 분유와 기저귀 등 각종 생활물품은 물론 생활비도 일부 지원한다”고 했다. 다만 새가나안교회의 이기동 목사는 “대부분 부모가 아이를 남겨 두고 그냥 떠나 설득할 기회가 많지 않고 영아의 약 1% 정도만 친부모의 품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판단도 엇갈린다. 아동복지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아동복지정책과 관계자는 “베이비 박스는 사회적 공감대와 맞닿아 있는 문제라 불법 여부를 잘라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관악구청 아동청소년팀 관계자는 “베이비박스가 사유지 내에 있어 이를 철거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땅치 않다”면서도 “베이비 박스는 아동 유기를 조장하는 불법 시설이 맞고, 주사랑공동체교회가 아동복지시설로 신고하지 않은 채 아이들을 돌보는 점 역시 아동복지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수사기관은 어떨까. 관악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관계자는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맡기는 행위는 경우에 따라 영아 유기로 보고 입건해 검찰에 기소 의견(유죄 의견)으로 송치한다”면서도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행위가 영아 유기 방조인지는 밝힐 수 있는 공식 입장이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현재 베이비박스 앞에서 영아 유기 행위를 감시하지는 않지만,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버렸다가 뒤늦게 마음을 바꿔 아이를 찾으러 경찰서에 오는 부모들을 입건한다.

좀 더 적극적인 기관도 있다. 부산 사상구청은 관할 내 한 사회복지법인이 2014년초 베이비 박스 설치를 추진하자 경찰에 아동유기 방조 혐의로 수사를 의뢰해 설치를 무산시켰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무원은 “이미 설치된 베이비 박스를 당장 폐쇄하거나 처벌을 한다면 여론과 지역 정치권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고, 이후 벌어질 영아 유기의 책임도 떠안아야 할 수 있다”면서 “눈치를 보며 서로 책임을 떠 넘기는 형국”이라고 전했다.

영아 유기 증가, 베이비박스가 부추기는가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영아 수는 2011년 37명에서 2012년 79명, 2013년 252명으로 급격히 늘어난 뒤 매년 200명 이상에 달한다. 영아 유기 건수가 늘어난 것을 두고 베이비박스 지지자는 책임을 입양특례법에 돌린다. 이종락 목사는 “외도나 강간 등으로 태어난 아이의 부모나 청소년 부모는 현실적으로 출생 신고를 하기 어렵다”며 “그런데도 입양특례법은 입양을 보내려는 아이는 출생 신고가 돼 있어야 하고, 입양을 결심해도 일주일 간 숙려기간을 두도록 강제하고 있어 그 부작용으로 영아 유기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입양특례법은 과거 수십년간 양부모가 입양아에 대해 마치 친부모인양 허위로 출생신고를 하는 방식으로 민간기관을 통해 탈법 입양을 하는 관행을 없애고 무분별한 해외 입양을 줄이기 위해 2012년 8월 시행됐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 권고에 따라 입양을 기존 ‘신고제’에서 ‘법원 허가제’로 바꾸었고, 국가가 가급적 입양보다는 원가정(친부모) 보호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무를 명시했다.

하지만 반론도 적지 않다. 김형범 미혼모지원네트워크 기획팀장은 “대다수 영아 유기는 미혼모가 아이를 키우려 할 때 받을 수 있는 정부 지원 등의 정보를 제때 얻지 못해 생긴다”면서 “미혼모들이 강화된 입양특례법 때문에 입양이 법적으로 어렵다고 보고 영아를 유기했다는 사례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이들은 베이비박스가 영아 유기를 적극적으로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최형숙 ‘변화된 미래를 만드는 미혼모협회 인트리’ 대표는 “처음부터 아이를 유기해야겠다고 마음 먹는 엄마는 극히 드물다”면서 “어려운 여건 탓에 기를 것이냐, 포기할 것이냐를 고민하는 순간 베이비박스라는 ‘편리한 대안’ 때문에 포기 쪽으로 마음이 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모임(TRACK)’의 제인 정 트렌카 대표 역시 2014년 논문에서 영아 유기가 급증한 것은 언론보도를 통해 베이비박스 인지도가 급격히 올라간 2013년부터였다고 주장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지난 2일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공동체의 영아 보호소에서 봉사자들이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온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배우한기자bwh3140@hankookilb.com
지난 2일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공동체의 영아 보호소에서 봉사자들이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온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배우한기자bwh3140@hankookil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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