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 나흘 만의 북 미사일 실험
문 대통령의 안보 불안 줄이는 기회 돼
한반도 운명 새로 개척할 관계 만들어야
세상 일 알기 어렵다는 걸 요즘 거듭 느낀다. 5ㆍ9대선 1주일 전에 벌어진 바른정당 탈당사태가 그렇다. 소속 의원 32명 중 13명이 탈당과 함께 홍준표 후보 지원을 선언하자 금방 바른정당이 붕괴될 것 같았다. 그러나 웬걸 일반 국민의 비난이 탈당 의원들에게 빗발치고 바른정당에는 응원과 후원금이 쇄도했다. 발군의 TV토론에도 3~4%대에 머물던 유승민의 지지율이 5%를 돌파하더니 대선에서 6.8%를 찍었다. 그는 이제 개혁보수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탈당사태가 없었다면 생각하기 어려운 반전이다.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 취임 나흘 만인 14일 새벽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 매체들에 따르면 “위력이 강한 대형중량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새 형의 중장거리 전략탄도로켓 화성-12”다. 사거리도 “미 본토와 태평양작전지대가 우리의 타격권 안”이라고 큰소리 칠 정도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다른 새로운 대북정책을 모색 중인 문재인 정부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문 대통령이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달리 보면 문 대통령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한 측면도 있다. 우선 새벽 시간임에도 매뉴얼대로 신속하게 대응함으로써 국민에게 ‘준비된 안보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 준 셈이 됐다. 아직 박근혜 외교안보라인 그대로지만 시스템에 따라 문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해 대책을 지시하고 북한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날리기까지 빈틈 없는 대응이 이뤄졌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야 남한의 새 정부 사정은 안중에 없고 자기 일정표대로 가는 수순이겠지만 문 대통령에게 안보 문제에 단호히 대응하도록 자리를 깔아 준 결과가 됐다. 대북 인식과 정책 면에서 문 대통령에 대한 의구심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일부 국민을 안도하게 하는 효과도 냈다. 대선기간 입만 열면 좌파 정권 출범을 막겠다며 문재인 후보를 공격했던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미국에서 TV를 통해 이런 소식을 전해 들었다면 좀 머쓱했을 것이고.
북한의 이번 미사일 발사는 발등의 불인 주한미군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서도 좌고우면할 여지를 줄여 문 대통령의 입장을 편하게 해 준 측면이 없지 않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사드 배치에 대한 최종 결정은 새 정부에 맡기자고 했지만 막상 대통령으로서 한미동맹을 생각한다면 사드 배치 진행 과정을 되돌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북한의 중장거리미사일 위협이 한층 현실화한 상황에서 사드 배치 반대 목소리는 약해질 수밖에 없고, 문 대통령도 현실을 인정하는 데 따르는 부담을 줄일 수 있을 만하다.
개성공단 재가동,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대선 과정에서 논란을 빚은 공약도 당분간 미뤄놓을 수밖에 없게 됐다. 그간 구상해 왔던 대북정책 전반을 차분하게 검토하고 재정립할 수 있는 시간을 번 셈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은 여러 계기를 통해 분명해졌다. 명실상부한 핵 보유국으로서의 능력을 갖추겠다는 그의 욕망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문 대통령이 이번 미사일 발사를 대북정책을 보다 치밀하게 벼리는 계기로 삼는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다.
이쯤에서 각각 남북의 최고지도자로서 문 대통령과 김정은의 궁합을 생각해 본다. 좋든 싫든 앞으로 5년간 맞상대할 수밖에 없는 사이다. 두 사람의 궁합에 따라 남북관계와 한반도의 운명이 달라진다. 문 대통령은 누가 뭐래도 김대중, 노무현의 햇볕정책을 계승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가 핵 보유국을 고집하고 이미 상당 수준에 도달한 상황이다. 문 대통령의 성(Moon)과 햇볕(Sunshine)을 결합한 ‘달빛정책’(Moonshine policy)이란 조어가 외국 언론에서 화제가 됐지만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달라야 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처럼 북이 먼저 변화해야 돕겠다는 자세로는 달라질 게 없고, 그렇다고 경협과 지원을 재개한다고 쉽게 변할 김정은 체제가 아니다. 이 딜레마를 딛고 한반도의 운명을 새롭게 개척할 두 사람의 궁합을 기대한다.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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