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시설은 43개소에 불과
애연가들 주변과 마찰 잦아
“올해 흡연부스 예산 5억 확보”
서울시 등 지자체 갈등해결 나서
“담배냄새 때문에 고통스럽습니다. 제발 흡연을 자제해 주세요.”
30년째 흡연 중인 직장인 최모(51)씨는 최근 서울 마포구 합정동 사무실 건물 뒤편에 붙은 흡연자제 요청 글을 보고 머리가 복잡해졌다. 쉬는 시간에, 점심 시간에 삼삼오오 몰려드는 근처 직장인들이 끽연의 마지막 해방구로 여겼던 공간에 피해자(?)가 등장했으니 더 이상 흡연을 고집할 수도 없는 노릇. 최씨는 “어딜 가도 비흡연자들의 눈치를 봐야 하니 솔직히 답답하다”면서 “비흡연자를 고려해야 한다는 데 동의는 하지만 최근 확대되고 있는 ‘흡연권 제약’은 가혹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푸념했다.
금연거리 지정 등 각종 금연정책에 애연가들의 소리 없는 비명이 늘고 있다. 서울시가 지하철 출입구 반경 10m 이내를 흡연금지 구역으로 정한 것이 1년 전인 지난해 5월, 시내 주요 거리에 속속 흡연금지 딱지가 붙는 등 ‘금연압박’이 늘고 있는 상황. 애연가들은 “흡연인구에 대한 배려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흡연 장소 부족’이 첫 손에 꼽힌다. 15일 서울시에 따르면 2013년 10만 곳이 채 되지 않던 실내외 금연구역 지정 장소(9만6,928곳)는 4년째 되던 지난해 24만4,670곳으로 약 2.5배 늘었다. 직장인 김모(58)씨는 “사무용 건물, 공공장소 등 어딜 가도 ‘금연구역’만 강조됐지, 흡연구역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다. 실제 거리에 설치된 흡연시설은 서울 시내 43개소밖에 없으며, 이마저도 25개 자치구 중 11개 구에만 집중돼 있다.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려고 해도, 지정 장소를 찾을 수가 없다는 게 흡연하는 이들의 불평이다.
그들만의 ‘암묵적 흡연구역’을 만들거나, 최대한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담배를 피워보지만 이내 비흡연자들과 마찰을 빚는다. 한 직장인은 “비흡연자들의 매서운 눈초리를 어딜 가든 의식할 수밖에 없다”며 “여기도 안 되고 저기도 안 되고, 담배는 그럼 왜 파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물론 이들의 불만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남에게 피해만 주는 흡연자의 권리를 왜 보장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직장인 정모(33)씨는 "금연정책 자체가 흡연 비율을 줄여 국민의 보편적인 건강을 높이려고 하는 정책인데, 흡연권을 요구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간접흡연처럼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하면서도 끽연의 권리를 주장하는 게 말이 되냐”고 반박하기도 한다.
이런 ‘흡연 갈등’ 해결을 위해 결국 지방자치단체까지 나섰다. 서울시 관계자는 “올해 흡연부스 설치를 위해 5억5,000만원의 예산을 확보했다”며 “시민들을 대상으로 흡연부스 디자인도 접수한 상태”라고 밝혔다. 시는 다만 “최종 목표는 흡연자를 줄여 부스를 다시 없애는 일”이라며 흡연권을 보장하면서도, 금연정책을 꾸준히 펼쳐갈 뜻을 전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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