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동물환자를 만나다 보면 “세상에 이런 일도 생기네”라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중 하나는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고 오는 고양이 환자들을 진료할 때입니다.
바늘을 먹고 오기도 하고, 비닐을 세 번이나 먹어 배를 열어야 했던 고양이 환자도 있었습니다. 스타킹을 통째로 삼켜서 장이 막히기도 하고, 심지어 자갈을 위장 가득 담아오는 경우도 있었는데요, 깔끔하고 영리할 것 같은 고양이들이 이물을 먹어서 동물병원 문을 두드리는 일이 생각보다 비일비재합니다.
이처럼 이물질을 씹고 핥고 먹는 행동을 이식증이라고 합니다. 이런 이상행동이 한번의 에피소드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이물을 먹고 빨고 핥으면 더욱 문제인데요. 매번 수술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장 안의 이물로 인한 장폐쇄나 장천공의 우려가 있는데 그대로 놔둘 수도 없어 난처한 상황을 연출하게 되지요.
이물질을 먹어서 자꾸 문제가 발생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이 원천적인 해결책입니다. 당연하게 들리겠지만 씹고 핥고 먹는 이물질을 고양이로부터 완전히 격리하는 것, 이것만큼 완벽할 해결책은 없습니다. 상습적으로 이런 행동을 보이는 고양이는 특히 선호하거나 집착하는 물질이 있습니다. 스타킹, 돌, 바늘, 비닐, 인형, 스폰지 등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파악해서 고양이 주위에서 완벽하게 차단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고양이는 왜 이물질을 씹고, 핥고 먹는 걸까요? 우선 정서적 안정을 얻고자 이상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엄마로부터 멀어진 새끼고양이라면 충분히 엄마의 젖을 빨지 못한 결핍을 나이 들어 이물을 핥고 씹고 빠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불안과 불만에 대한 표현 방식으로 이물을 씹기도 합니다. 가족들이 외출하고 나면 혼자 있는 외로움과 불안감을 견디지 못하고 아무거나 씹고 먹고 핥는 것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죠. 이를 ‘격리불안증’이라 부릅니다.
모두 일종의 사랑결핍증을 앓는 동물환자들이라고 할까요. 때문에 정서적 불안과 결핍을 상쇄할 만큼 많이 사랑해주고, 충분한 스킨십을 하며 자주 놀이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또 고양이가 안정을 취할 수 있는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정서적 안정을 가져올 수 있는 개박하(캣닢) 등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물론 앞서 언급한 대로 집착하는 물건을 고양이로부터 완벽히 차단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하지만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고, 위의 방법으로 해결하지 못할 경우에는 정신과 약물을 이용한 치료방법을 검토해야 합니다. 하지만 약물요법이 반드시 필요한 지 확인하고 약물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 충분한 건강검진을 진행한 이후, 약물요법을 시도할 것을 권합니다.
우리 고양이가 이식증을 보인다면 이물로부터의 격리와 차단, 충분한 교감과 놀이, 건강검진, 약물요법의 순으로 접근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과정에서 원인과 해결책이 찾아집니다.
이미경 수의사(이리온 동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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