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스승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스승의 날이다. 숨가쁜 삶을 살아가는 이도 이날만큼은 잊고 지냈던 옛 선생님들의 이름을 떠올려 봤을 터. 스승의 날을 기념해 참된 가르침을 줬거나 아픈 기억을 상기시키는 다양한 유형의 선생님들을 영화를 통해 만나보자.
그리운 우리 ‘캡틴’ 로빈 윌리엄스
‘죽은 시인의 사회’(1989)는 배우 故 로빈 윌리엄스를 스승의 대명사로 만든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전통과 규율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남학교 웰튼 아카데미에 새로 부임한 문학 선생님 키팅 역을 맡는다.
“의학∙법률∙경제∙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해. 하지만 시와 미, 사랑, 낭만은 삶의 목적인 거야.”
영화 속 키팅 선생의 교육 철학은 현재를 즐기라는 의미의 라틴어 ‘카르페 디엠’(Carpe, carpe diem)으로 드러난다. 그는 공부∙입시 때문에 현재의 행복을 저당 잡힌 학생들에게 문학의 아름다움과 마음의 소리에 충실한 삶을 일깨워준다. 새장 속에 갇힌 채 살아온 아이들은 내면의 특별함을 깨닫게 도와준 스승 키팅을 ‘캡틴’(Captain)’이라고 부른다.
로빈 윌리엄스는 영화 ‘굿 윌 헌팅’(1997)에서는 천재적인 두뇌를 가졌지만 반사회적 성향이 강한 청년 윌 헌팅(맷 데이먼)을 어르고 달래는 심리치료사 숀 맥과이어로 등장한다. 그는 어릴 적 트라우마로 고통 받는 윌에게 ”네 잘못이 아니다”(It's not your fault)는 따뜻한 말을 건네며 마음의 빗장을 푼다.
1등을 위해서라면 사랑의 매를 들어도 될까?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 영화 프로젝트로 제작된 영화 ‘4등’(2016)은 ‘만년 4등’인 초등학생 수영선수 준호(유재상)와 그의 새 코치 광수(박해준)의 이야기다.
“하기 싫지? 도망가고 싶고. 그때 잡아주고 때려주는 선생이 진짜다. 내가 겪어보니 그렇더라.”
광수는 ‘때리는 스승’이다. 한때 아시아 신기록까지 달성한 국가대표 출신이었던 광수는 코치의 체벌과 폭압을 견지디 못해 도망치듯 수영을 관뒀다. 하지만 놓친 꿈에 대한 회한의 감정을 제자에게 쏟으며 스스로 체벌하는 스승이 돼 버린다. ‘만년 4등’이라는 아들의 꼬리표를 어떻게든 떼고픈 엄마 정애(이항나)는 준호의 멍 자국을 못 본 척 한다. 정작 준호만 ‘이렇게까지 1등을 해야 하나’는 의문을 품고 물살을 가를 뿐이다.
1등만 기억하는 잔인한 세상. 영화 4등은 한때 1등 선수였던 광수와 1등을 당위로 배운 준호의 삶을 교차시키며 순위에 매몰 돼버린 다른 가치들을 상기시켜 준다.
폭군이냐, 잠재력을 자극하는 아드레날린이냐
위플래쉬(2014)는 최고의 드럼 연주자를 꿈꾸는 셰이퍼 음악 학교의 새내기 앤드류(마일즈 텔러)와 정신적 학대를 일삼는 폭군 교수 플렛처(J.K. 시몬스), 두 광기의 대립을 그린 영화다.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말이 ‘그만하면 잘했어’ 야”
극중 플렛처의 교육법은 가혹하다 못해 잔혹한 수준이다. 학생 간 피 튀기는 경쟁을 부추기는 건 기본, 인격 모독과 폭언은 일상다반사다. 그에게 어쭙잖은 칭찬과 독려는 달지만 몸엔 해로운 설탕 같은 존재. 영화 제목이자 극에서 밴드가 연주하는 재즈 곡 제목인 ‘위플래쉬’(채찍질 이라는 의미)처럼 플렛처는 학생들을 끊임없이 몰아세운다.
역설적으로 그의 지독한 교육방식은 앤드류의 오기를 자극하고 만다. 천재가 되길 갈망하는 앤드류는 사랑과 건강도 반납한 채 플렛처 교수와 신경전을 벌인다.
숨은 끼 일깨워 준 ‘흥부자’ 선생님
폐교 위기에 처한 학교를 노래로 부활시킬 수 있다면? 영화 시스터액트2(1993)는 문 닫을 위기에 빠진 학교를 음악선생님과 학생들이 합심해서 지켜내는 이야기다. 그들이 학교를 살리는 방법은 바로 합창대회에서 우승을 거두는 것.
“난 한번도 쇼걸이었던 적은 없어. 스타였지”
“누군가가 되고 싶고 어딘가 가고 싶다면 지금 일어나서 내게 집중하는 게 좋을걸?”
수녀이자 음악선생님인 들로리스(우피 골든버그)의 정체는 사실 라스베가스에서 잘 나가는 가수다. 전작에서 인연을 맺은 수녀들이 자신들이 선생으로 있는 학교의 음악 교사로 와달라는 요청에 다시 수녀 복을 입은 것.
반항심으로 무장한 아이들은 처음엔 들로리스를 경계하지만 점차 자신들의 재능을 알아주는 그에게 마음을 열고 열정적으로 합창단 활동에 임한다. 밤무대 출신의 들로리스는 모범적인 교사는 아니었으나 물러서지 않는 ‘모험’의 가치를 일깨워준 스승이다.
‘강약약강’의 뼈아픈 기억
영화 ‘친구’(2001)의 못된 씬 스틸러 담임선생님(김광규)은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인물이다. 제자들보다 시계가 더 소중한지 손찌검 전엔 어김없이 손목시계를 푼다. 오죽 시나리오상 이름이 ‘야비한 선생’일 정도.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좋겠다! 너그 아부지 건달이라서 좋겠어...이 쌔빠질 놈아!”
그가 연기한 담임 선생님은 힘의 논리에 좌우되는 사람이다. 학생들에게 일일이 아버지 직업을 묻고 거기에 맞춰 인격 모독과 언어∙신체 폭력을 가하는 장면은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든다. 극중 준석(유오성)을 무자비하게 때리다가 그가 건달의 아들임을 알게 된 후 굳어버리는 얼굴은 우습기까지 하다.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강약약강형’ 인물인 것이다.
김광규가 연기한 선생은 학창시절 한번쯤 조우 했을 ‘나쁜 교사’의 전형이다. 그의 모습은명분 없이 체벌을 가하거나 제자가 가진 자본이나 힘의 크기에 비례해 차별대우하는 교사를 연상케 한다.
진은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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