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노래에 감염된 나는 여전히 속수무책이다.” – 시인 안도현
비단 안도현 시인만 그러할까? 가수 김광석은 1996년 1월 6일 3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떴지만, 그가 남긴 노래는 지금까지 세대를 아우르며 우리의 감성을 촉촉이 적시고 있다. 여전히 이등병의 편지엔 ‘이제 다시 시작이다’라는 각오가 담겨 있고, 서른 즈음엔 옅어져 가는 청춘을 아쉬워하며 곧 닥칠 현실에 불안해한다. 그리고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고 마음을 다잡고, 거리에서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지난 사랑을 그리워한다.
김광석을 기억하기 위한 활동도 이어지고 있다. 후배 가수들은 그의 노래를 끊임없이 리메이크하고, 음반 제작자들은 ‘다시’라는 타이틀을 붙여 리마스터 앨범을 내놓고 있다. 2007년 음악 평론가들은 ‘서른 즈음에’를 최고의 노랫말로 선정했고, 2008년엔 추모 콘서트가 열리면서 서울 대학로에 노래비가 세워졌다. 2010년엔 김광석이 태어난 대구에 그를 기리는 ‘김광석 거리’가 조성됐다. 최근엔 그의 노래로 꾸민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공연되기도 했다.
지난달엔 대구에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도시를 둘러볼 수 있는 ‘김광석 버스’가 운행을 시작했다. 이른바 ‘더 플레이 버스(The Play Bus): 김광석’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의 후원으로 기획된 색다른 시티 투어 버스다. 전문 디제이가 한 시간 동안 김광석의 노래와 함께 그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 접수된 사연 등을 들려준다. 최종 목적지인 ‘김광석 거리’에 도착하면 버스 안에서 공연도 관람할 수 있다. 매주 금·토요일 오후 6시에 탑승할 수 있고 예약제로 운영된다. ‘더플레이버스(theplaybus.modoo.at)’ 사이트에서 신청할 수 있고 다음 달 17일까지 무료로 탈 수 있다.
지난 13일 금요일 대구에서 ‘김광석 버스’에 올라탔다. 그곳엔 김광석 노래에 감염돼 속수무책인 여행자들이 모여 있었다.
안녕하실테죠? 제가 김광석입니다
오후 6시, 대구 중구 문화동 노보텔 앰배서더 호텔 앞에서 ‘김광석 버스’가 출발했다. 버스 안엔 8세 어린아이부터 50대까지 남녀노소가 어우러져 있었다. 임용고시를 함께 준비하는 20대 커플, 곧 수술을 앞둔 남편과 그의 아내, 미국에서 온 부부 그리고 홀로 여행 중인 사람 등 각양각색이었지만 이들은 모두 ‘김광석’이라는 교집합 안에 담겨 있었다.
이창환 디제이가 간단한 인사와 함께 첫 곡으로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틀었다. 이 노래는 1994년 발매된 김광석의 유작이자 솔로 4집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힘겨운 날들도 있지만 새로운 꿈들을 위해 /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라는 노랫말처럼 힘들고 불안한 삶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 했던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대구역을 지나자 두 번째 곡으로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이 흘러나왔다. 노래 속의 ‘그녀’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누구는 첫사랑이라고 하고 누구는 어머니라고 주장한다. 노래가 끝나자 이창환 디제이는 김광석의 생애에 대해 짤막하게 들려주었다.
“김광석은 지금 이 버스가 가고 있는 대봉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다 상경해 학창시절을 서울에서 보냈지요. 1982년 대학에 들어갔고 1984년 김민기를 만나 ‘노래를 찾는 사람들’로 데뷔했습니다. 그러다 산울림의 김창완을 만나 동물원의 보컬로 활동을 시작했죠. 1집이 나오고 6개월 만에 2집이 발표된 걸 보면 당시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1989년 김광석은 홀로서기를 합니다. 매년 히트곡이 나왔고 솔로 앨범이 4집까지 발매됐지요. 리메이크 앨범도 두 장이나 냈어요. 1995년 8월엔 서울 대학로에서 1,000회 기념 콘서트를 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1996년 1월 6일 32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너무 짧은 생을 살았기에 우리는 그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상과 허구가 아닌 실제와 진실의 노래를 진심으로 부른 그는 순수한 영혼 그 자체였습니다.”
버스가 동대구역과 범어역 등을 지나며 방천시장에 도달할 때까지 ‘서른 즈음에’, ‘사랑했지만’, ‘먼지가 되어’ 등 김광석의 히트곡들이 연이어 흘러나왔다. ‘일어나’가 나올 땐 모두가 합창하기도 했다. 노래가 끝나면 어김없이 박수가 터져 나왔다. 화면 속 김광석은 마치 환호를 알아들은 듯 그에 맞춰 화답했다.
“저 같은 경우는 공연하면서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이게 제 비상구입니다. 물론 저 혼자 좋자고 하는 비상구가 되면 안 되겠지요. 오시는 분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그런 비상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서른 즈음에’ 불러 드리겠습니다.” - 김광석 콘서트 중
투어가 거의 끝나갈 때 즈음 길가에서 깜짝 공연이 펼쳐졌다. 대구에서 활동 중인 밴드 ‘안녕 코스모스’가 ‘거리에서’를 기타 반주와 함께 거리에서 불렀다. 오후 7시, 투어의 종점인 ‘김광석 거리’에 버스가 도착하자 공연이 이어졌고, 분위기는 순식간에 작은 콘서트장으로 바뀌었다.
공연이 끝나고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어느 중년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국 텍사스에서 27년째 거주 중인 이병욱 씨는 투어와 공연이 기대 이상이라며 좋은 추억을 얻었다고 말했다. “우리 부부는 김광석 세대입니다. 대구에서 함께 학교에 다니다 미국 유학길에 올랐을 때 한창 김광석 노래를 들으며 향수를 달랬죠. 제가 유일하게 안 틀리고 부를 수 있는 노래가 ‘거리에서’인데, 이 노래가 진짜 거리에서 공연될 줄은 몰랐어요. 그리고 ‘서른 즈음에’는 김광석 씨가 서른이 되기 전에 만든 노래인데요, 40대, 50대가 돼서 들어도 큰 공감이 됩니다. 김광석 씨가 계속 살아있었더라면 분명히 더 훌륭한 노래들이 나왔을 겁니다.”
이창환 디제이도 투어가 끝나고 김광석을 회상하며 말했다. “제가 고등학교 졸업하던 해에 김광석 씨의 비보를 접했습니다. 대학생이 돼서 콘서트에 꼭 가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직도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지요. 좋아했던 가수가 갑자기 사라져 상실과 슬픔이 컸습니다.” 디제이를 하며 기억에 남는 사연은 무엇이냐는 질문엔 이렇게 답했다. “특별한 건 없습니다. 대부분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입니다. 주로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청춘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음악엔 그때 그 시절을 돌이켜보게 하는 힘이 있으니까요.”
[영상] 거리에서 펼쳐지는 김광석 특별 공연 맛보기
김광석의, 김광석에 의한, 김광석을 위한 거리
‘김광석 버스’ 투어는 ‘김광석 거리’가 조성된 방천시장에서 끝난다. 이른바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라고 부르는 이 거리는 방천시장 뒷골목으로 애초 어둡고 지저분한 슬럼가였다. 그러다 김광석의 혼과 예술가들의 터치로 새로운 명소로 거듭났다. 2010년 처음으로 90m 구간이 벽화로 꾸며졌고, 이후 차츰 작품 수가 늘면서 현재 350m에 이르는 김광석 예술 거리가 됐다. 현재 이곳엔 주말마다 평균 5,000명 넘는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갤러리] 김광석다시그리기길
대구=조두현 기자 joe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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