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고생한 분은 미술 감독님이죠.” tvN 예능프로그램 ‘윤식당’의 이진주 PD에 따르면 윤상윤 미술감독은 지난 2월 인도네시아 발리 인근 작은 섬인 길리 트라왕간(길리)에 약 한 달이나 머물며 ‘윤식당’을 꾸렸다. 새집을 짓는 거나 마찬가지 과정이었다. 기존 건물이 너무 허름해 기둥 등 기본 골조만 놔두고 부엌부터 곳곳을 새로 단장했다. 화장실도 뜯어 수세식으로 개조했다. 테이블과 의자도 모두 현지에서 직접 주문 제작해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처음엔 고생인 줄 몰랐다. 윤 미술감독은 13일 “어수선한 한국과 달리 길리에 있는 모든 사람의 표정이 행복해 힘든 줄 모르고 작업했다”고 말했다. 식당 앞에 에메랄드 빛 해변이 펼쳐지고 인근에 식당도 드물어 휴양지의 여유로움을 보여줄 수 있을 거란 꿈에 부풀었다. 흰색과 파란색같이 밝은 색으로 식당 외관을 단장해 동화 같은 느낌도 살렸다.
낭만은 오래가지 못했다. ‘윤식당’ 영업을 시작한 지 하루 만에 건물 철거 소식이 날벼락처럼 떨어졌다. 누구보다 충격이 컸던 건 윤 감독이다. 그는 건물 철거 소식을 들은 뒤 “숙소의 카페에서 넋을 잃고 울었다”. 사전답사까지 따지면 두 달 가까이 ‘윤식당’ 짓기에 올인해 완성된 식당을 촬영 하루 만에 부셔야 한다니 속상할 수밖에 없었다. 윤 감독이 너무 서럽게 울었던지 카페 직원이 다가와 “신의 은총이 있길”(God Bless You)이라며 위로까지 했다고 한다. 정신을 차린 윤 감독은 ‘윤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헐리더라도 우리가 준비한 소품이랑 집기는 챙겨야 하잖아요. 이재민처럼 식당에서 하나라도 건져야 한다는 생각에 울면서 천정에 달린 등 떼고 했어요. 안타까웠는지 현지 주민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소품 같은 것 날라주고요. 고맙더라고요. 미술팀 뿐 아니라 제작진 모두 달려 들었죠. 현지 촬영을 도와주던 분까지요.”
제작진이 사전답사 때 눈여겨 봤던 곳 중 한 곳으로 ‘윤식당’ 2호점을 차리기로 하자, 윤 감독은 다시 바빠졌다. 현지 인부들을 불러 슈퍼마켓으로 쓰던 가게를 식당에 맞게 공간을 바꾸기 시작했다. 테이블도 식당에 맞춰 새로 짰다. ‘윤식당’ 2호점 촬영이 결정된 날 오후 1시부터 작업을 시작해 다음날 정오에 마무리를 끝냈다. 현지 자원봉사원들이 도와줘 가능했던 작업이었다.
고생 끝에 낙이 왔다. 우여곡절을 딛고 문을 연 ‘윤식당’ 2호점에는 손님들이 줄을 이었다. “여기 정말 예쁘지 않아?” 한 외국인의 말처럼 ‘윤식당’의 투박한 듯 자연스러운 인테리어어가 관객들의 눈길을 끈 덕도 크다. 윤 감독은 목재를 주요 인테리어 소재로 활용해 ‘윤식당’을 꾸렸다. 편안함과 따뜻함을 주기 위해서다. 목공예가 발달한 현지 문화의 특성을 고려해 수공예로 만든 목각인형을 포인트 장식으로 썼다. 배우 윤여정, 신구, 이서진, 정유미의 아바타에 해당하는 네 개의 토끼인형과 테이블마다 놓인 새 인형 등이다.
아날로그 위주 현지 문화가 독이 될 때도 있었다. 섬에 컬러프린터가 없어 캐리커처로 윤여정의 얼굴이 그려진 ‘윤스키친’ 간판을 만드는 데 애를 먹었다. 서울에서 디자인한 간판 문양을 A4 용지로 흑백 출력해 문양대로 오려 간판에 붙인 뒤 일일이 페인트로 색을 입히는 수작업을 했다.컬러프린트만 있으면 출력물을 간판에 붙이기만 하면 되는 일인데, 관련 장비가 없어 생각지 못한 고생을 한 것이다.
‘윤식당’ 2호점이 자리 잡는 걸 보고 윤 감독은 먼저 서울로 돌아왔다. 고생을 많이 해 다시는 돌아보지도 않을 줄 알았던 길리를 그는 지난달 다시 찾았다. 일이 아닌 관광객으로 오롯이 섬의 낭만을 즐기고 싶어서다. 영업이 끝난 ‘윤식당’ 2호점은 헐리지 않고 남아 있을까. 길리에서 한 달여를 지내고 지난달 27일 귀국했다는 그는 “방송에서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게 헐리지 않고 남아 있다”며 웃었다. 물론, 누군가가 식당을 운영하는 건 아니다. 윤 감독은 “관광객들이 ‘윤식당’에서 사진 촬영을 많이 하고 있더라”며 웃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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