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보들의 행진’(1975)의 OST LP 표지에서 가수 송창식은 삐딱하게 팔을 기대고 서 있다. 무표정하게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청년 송창식의 모습에 반항기가 서려 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았네/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송창식이 불러 영화의 주제곡으로 쓰인 ‘고래사냥’은 1970~80년대 청춘의 저항 찬가로 불렸다. 군사정권에 억눌려 장발이란 이유로 단속을 당하던 경직된 시대를 산 이들은 ‘고래사냥’을 목청 높여 부르며 일탈을 꿈꿨다.
경쾌한 멜로디와 낭만적인 가사와 달리 ‘고래사냥’은 한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정권의 눈 밖에 나 금지곡으로 지정된 탓이다. ‘가슴에는 슬픔만 하나 가득’같은 허무주의적 노랫말이 새마을운동으로 ‘잘살아보세’를 외치던 전체주의 시대에 허용될 리 없었다. 이 곡은 9년 뒤 동명의 영화 ‘고래사냥’(1984)의 주제가로도 쓰여 다시 회자했다.
소설가인 최인호(1945~2013)가 노랫말을 쓰고, 송창식이 작곡했다. 두 사람의 창작 인연은 깊다. 송창식의 ‘밤눈’을 비롯해 ‘꽃, 새, 눈물’도 최인호가 작사했다.
‘고래사냥’은 송창식의 음악적 변화를 보여준 곡이기도 하다. 1960년대 남성 포크 그룹 트윈폴리오 멤버로 활동한 송창식은 클래식한 포크송을 주로 만들다 ‘고래사냥’ 이후 그의 음악에 한국적인 색채가 짙어진다. 국악을 버무린 한국적 가락과 노랫말이 인상적인 1980년대 그의 노래 ‘가나다라’, ‘우리는’, ‘푸르른 날’ 등이 대표적인 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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