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샤는 최고야. 나라면 마사처럼 열심히 못 살았을 거야. 화이팅!”
우즈벡에서 온 마샤(29)는 대구 칠곡에서 인기 스타다. 2년 전 칠곡에서 벌어진 노래자랑에 참여해 수상하면서 얼굴을 알린 덕이다. 무대에서 트로트를 감칠맛 나게 불러 관중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이후 4년 전 남편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혼자서 아들과 딸을 꿋꿋하게 키우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이 악수를 청해오기도 한다. 특히 아파트 ‘언니들’에게는 인기 최고다. 마샤의 꿈이 가수라는 것을 알고는 음반만 내면 팬클럽을 만들어서 전폭 지원에 나서겠다는 ‘언니들’이 줄잡아 스무 명이다. 마샤는 “남편이 죽었을 때만 하더라도 눈앞이 깜깜했는데 지금은 이웃들 모두가 가족이나 다름없다”면서 “한번도 외로운 적이 없었다. 오히려 차근차근 꿈을 이루어간다는 생각에 친정에 있을 때보다 행복하다”고 말했다.
마샤는 2010년 2월에 한국으로 왔다. 우즈벡에 일하러 온 남편과 결혼해 첫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남편이 다니던 회사에서 통역으로 일하던 삼촌을 비롯해 가족 모두가 결혼을 반대했지만 남편이 부모님을 적극 설득한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친정 식구들 모두 “사위가 아니라 아들 같다”면서 좋아했다.
남편을 따라 낯선 나라에 왔지만 적응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시어머니가 너무 잘해줬다. 마샤를 딸처럼 대했다.
“뭘 못한다고 타박하신 적이 없었어요. 한국에 오자마자 한국말 배우라면서 다문화센터에 보내주시고, 한국 음식이 입맛에 안 맞을 거라면서 자주 식당에 가서 갈비탕을 사주셨어요. 갈비탕이 고향에서 먹던 슈르파와 비슷하거든요.”
출산 후에는 3달 동안 미역국을 끓여주었다. 친정어머니나 다름없이 보살폈고 마샤는 “엄마”라고 부르면서 딸처럼 따랐다. 그렇게 시어머니는 3년 동안 주방 일을 맡아서 해주었다.
남편이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고부의 정은 더 깊어졌다. 마샤는 “시어머니가 있어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고 고백했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남기고 간 손녀와 손자를 보면서 그리움을 달랬다. 매주 시댁을 방문했다. 시어머니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아들을 다시 만난 것처럼 눈물을 흘리며 반가워했다.
2년 전 마샤에게 또 한 번의 비극이 찾아왔다. 시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었다. 남편이 훌쩍 떠난 바로 그 계절이었다. 남편과 시어머니의 제사가 이틀 차이다. 시어머니 장례식에서 남편이 죽었을 때보다 더 서럽게 울었다.
“엄마만 보고 살았는데, 인제는 누구보고 살아요, 하면서 엉엉 울었어요. 너무 막막했어요.”
그때 두 시아주버니와 형님들이 마샤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말했다.
“우리하고 같이 살면 되지. 마샤, 걱정하지 마. 우리가 늘 옆에 있을게.”
마샤가 전화를 하면 언제든지 달려왔다. 아이들과 관련해 관공서에 신고할 일이 있으면 문서를 대신 꾸며주기도 했다. 크고 작은 일들을 모두 “집안 일”이라면서 기꺼이 맡아주었다.
“주변의 위로가 정말 큰 힘이 됐어요. 마음이 진정되고 나니까 엄마한테 더 잘해드리지 못한 것, 그리고 너무 갑작스럽게 떠나는 바람에 사랑한다는 말을 못해드린 게 지금도 너무 미안해요. 엄마에게 미안해서라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요.”
마샤는 현재 아르바이트로 식료품 공장에서 일하면서 대구한의대 다문화복지한국어학과에서 복지사와 통역사 자격시험을 준비 중이다. 시험을 통과하면 다문화센터에 취직하거나 통번역사로 일할 수 있다. 사실 통역은 벌써 시작했다. 북부경찰서 소속으로 우즈벡 관련 통역이 필요하면 연락이 온다. 소속은 북부경찰서지만 대구 전체를 무대로 활동한다. 자녀 둘을 돌보면서 자격증 공부에 통번역사까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산다. 어려운 처지를 딛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이웃들도 매료되었다. 마샤의 꿈을 열심히 응원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자기 일처럼 나서주는 이유다. 마샤는 “나를 가장 사랑하고 아껴주던 엄마와 남편이 곁에 없지만, 친절한 한국 사람들 덕분에 한국에 시집오길 잘했다는 생각은 여전하다”면서 “앞으로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즐겁게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고향에 있을 때도 가수를 하고 싶었어요. 제 목소리가 너무 예뻐서 가수해라는 말을 자주 했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반대했어요. 몰래 예술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아버지에게 들켜서 보통 고등학교로 옮겼어요. 한국에서는 한 번도 ‘하지 마’하는 말을 들은 적이 없어요. 그래서 행복해요. 꼭 스타가 되어서 고향에까지 알려지고 싶어요.”
그녀는 19일 대구 공원 야구장에서 열리는 내고장사랑대축제 축하공연에 지역 출신의 쟁쟁한 가수들과 함께 무대에 선다. 가수들과 함께 무대에 서는 것은 처음이다. 홍진영의 ‘사랑의 배터리’와 ‘산다는 건’ 두 곡을 부르기로 했다. 그녀는 “첫 무대인 만큼 기똥차게 잘해서 시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올해는 다섯 살 난 딸이 모델로 데뷔한다. 지난해 어린이 모델 모집 공고에 사신을 보내 합격 통보를 받았다. 정기적으로 모델 수업을 받고 있다.
“딸과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셈이에요. 마음껏 꿈꾸고 또 그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이 모든 게 시댁식구들과 가족 같은 아파트 ‘언니들’ 덕분이에요. 한국 사람들, 너무너무 감사해요. 열심히 노력해서 이 모든 빚을 아름답고 신나는 노래로 갚을게요. 지켜봐 주세요!”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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