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 섬기겠다는 문재인 대통령
불평등과 차별ㆍ배제 구조 해체 필수
진정한 통합은 과감한 개혁 선행돼야
문재인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대선 출구조사 결과 1위로 나오자 당 선거상황실을 방문해 한 말은 개혁과 통합 두 과제를 모두 이루겠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당선이 확정된 뒤 국회에서 대통령 취임식을 할 때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국민까지 섬기겠다며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하루 전까지 개혁과 통합을 함께 말하던 그가 취임사에서 통합을 거듭 강조한 것은 생각과 기호와 삶의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가 차별 받고 배제돼서는 안 된다는 절실함에 대한 공감일 것이다.
통합 대통령은 문재인만의 꿈이 아니다. 놀랍게도 박근혜 전 대통령도 한때 통합 대통령을 꿈꾸었다. 그는 5년 전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뒤 수락연설에서 “이념과 계층, 지역과 세대를 넘어,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모두가 함께 하는 국민대통합의 길을 가겠다”면서 ‘100% 대한민국’을 약속했다. 대통령 당선 후에는 우리 사회의 상처와 갈등을 치유하고 공존의 문화를 만들겠다며 국민대통합위원회라는 기구까지 발족시켰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누구도 박근혜를 통합의 대통령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모진 글로 타인에게 숱한 상처를 준 윤창중을 대변인을 앉힌 것은 그의 통합론이 애초부터 거짓이었다는 증거다. 이것으로 모자랐는지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문화예술인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기필코 불이익을 주고,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며 “혼이 비정상”이라는 해괴한 언어까지 써가며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해 극심한 분열을 초래했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당의 유승민 의원을 공개 비난한 것은 스스로 통합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세상에 공표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만큼 문재인 대통령이 통합을 앞세운 것은 의미가 크다. 정치로 좁혀 보면 선거에서 패한 경쟁 정당과 그 후보들을 보듬고 그들과 함께 하겠다는 협치의 필요성은 따로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자명하다.
그러나 통합의 중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이를 조금씩 걱정하는 사람 또한 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정치권과 언론의 통합론 배후에 정략적 계산이 깔려있고 따라서 통합을 역설하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문제삼지 말아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라는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의 지적도 그 중 하나다. 이를 두고 지나친 걱정이라 할지 모르나 당장 문재인 대통령 취임에 맞춰 신동욱 공화당 총재가 “국민대화합, 대통합 차원에서 박근혜 대통령 사면 복권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보면 통합을 앞세운 퇴행적 요구가 분출할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개혁을 무마하고 가로막는 방편으로 통합이 동원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편으로는 개혁을 정치 보복으로 호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기존 구조의 존속을 꾀할 수 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가 통합을 하려면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그런 가능성을 꿰뚫어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통합의 전제조건으로 언급한 것은 불평등ㆍ기득권 구조와 정경유착 및 양극화 문제 등의 해소를 위한 정책 실행으로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요구해온 개혁의 구체적 내용들이다. 따라서 최 교수의 생각은 개혁이 선행돼야 통합을 이룰 수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개혁 없이 통합 없다”는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의 선개혁 후통합론이나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의 담대하고 과감한 개혁 요구도 비슷한 주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통합을 강조했지만 서훈 국정원장 지명과 조국 민정수석 임명 등을 통해 굳이 말로 할 필요 없이 개혁 의지를 보여주었다. 국정 역사교과서를 폐지하고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없애겠다고 한 것은 교육을 정상화하고 불평등과 양극화 구조를 바로잡겠다는 개혁의 뜻을 다시 공언한 것이다. 이런 개혁을 통해 불평등과 차별과 배제의 구조가 해체되고 그래서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 자신이 존중 받고 있다고 믿을 때라야 비로소 통합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개혁과 통합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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