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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의 글쟁이 페달] 새 정부에서는 꼭 1.5미터 법!

입력
2017.05.1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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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달리고 있는 자전거 옆을 대형 트럭이 스치듯이 지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도로를 달리고 있는 자전거 옆을 대형 트럭이 스치듯이 지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야이 OO OO야, 자전거가 왜 차도로 기어 나와?” 느닷없이 욕 한 바가지. 내 왼편 승용차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다. 물론 그런 헛소리엔 딱 부러지는 대답이 준비되어 있다. 원래 자전거는 도로교통법상 ‘차’다! 인도가 아니라 차도로 다녀야 한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도로교통법상 자전거의 지위를 모르는 게 아니다. 단지 자전거라는 ‘같잖은 탈것’이 눈앞에 알짱대는 게 못마땅한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사이클 인구가 급속히 늘면서, 자동차와 자전거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아니, 갈등이란 말은 적절치 않다. 마치 ‘자동차 세력’과 ‘자전거 세력’이 대등한 것처럼 들릴 수 있으니 말이다. 정확하게는 자동차 운전자들 일부(일부라 해도 엄청난 숫자인)의 ‘자전거 혐오’가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고 해야 한다.

그 혐오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말이 바로 ‘자라니’다. 자라니는 자전거와 고라니를 합친 조어다. 글자 그대로 자전거 라이더를, ‘자동차를 위협하는 동물’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모 자동차 커뮤니티에선 “자라니 새끼들 카메라 없는 데서 만나기만 해봐. 차로 싹 밀어버릴 테니” 운운하는 끔찍한 협박들이 공공연히 내걸린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꼭 나오는 말이 있다. 자전거 라이더들이 ‘개념 없이’ 도로를 점유해 민폐를 끼친다는 주장. 그리고는 짐작대로 도로 전체를 막고 병렬 주행하는 자전거들의 사진을 들이민다. 물론 그런 라이더가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그들은 분명 잘못했고 자전거는 공도에선 일렬 주행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동차로 자전거를 위협하는 게 정당화되진 않는다. 그건 그거, 이건 이거다. 도로에서 앞의 자동차가 아무리 느리게 진행해도 그 자동차를 뒤에서 들이받거나 위협운전을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물며 자전거는 자동차에겐 교통약자가 아닌가. 실제로 자전거보다 훨씬 느린 경운기나, 트랙터, 리어카도 도로를 공유하는데, 유독 자전거만 혐오와 위협운전의 타깃이 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자동차 운전자의 자전거 위협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운전대만 잡으면 자전거를 향한 공격성이 폭발하는 운전자들은 다른 나라에도 꽤 많이 서식하고 있나보다. 한국에서 대선이 치러진 5월 9일, 프랑스 남부에서 훈련 중이던 영국 사이클 선수가 박살난 자전거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뒤에 따라오던 자동차가 고의로 나를 친 뒤 그대로 사라졌다.’ 글과 사진은 수만 번 리트윗 됐다. 그 선수는 크리스토퍼 프룸이었다. 사이클에 관심 없는 사람이면 ‘누구?’라고 갸웃할 수 있겠다. 그냥 쉽게 말하자. 크리스 프룸은 사이클계의 리오넬 메시, 사이클계의 클레이튼 커쇼, 사이클계의 르브론 제임스다. 투르 드 프랑스를 3회나 우승했고 앞으로 몇 번 더 우승할지 모른다는 천재 사이클리스트, 말도 안되는 운동능력 때문에 인류 최강을 넘어 ‘외계인’이라 불리는 명실상부 현존 최강의 슈퍼스타다. 프룸이 겪은 황당한 사고에 세계 사이클 팬들이 경악했음은 물론이다. 그조차 자동차 운전자의 혐오범죄를 피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투르 드 프랑스 3회 우승자가 뺑소니 사고를 당한 현장. 크리스 프룸 트위터
투르 드 프랑스 3회 우승자가 뺑소니 사고를 당한 현장. 크리스 프룸 트위터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택배가 가장 빠른 나라다. 반면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르는 나라는 어떤 사회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개인을 단죄하기보다 효과적인 법안과 제도부터 내놓는다. 특히 공동체 구성원의 생명이나 안전에 직결된 사안인 경우,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입안이 실행된다. 자전거 붐이 일면서 여러 나라에서 자동차와 자전거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심각한 것이 자동차에 의한 위협운전이었다. 설령 고의가 아니더라도 큰 질량의 자동차가 매우 가벼운 자전거 옆을 스쳐가는 것만으로 풍압으로 인해 큰 물리적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서는 자동차와 자전거 간의 최소한의 거리를 확보하는 게 필수적이다.

그래서 나오게 된 게 이른바 ‘3피트 법(1.5미터 법)’이다. 통칭해 ‘최소추월거리(Minimum Overtake Distance, MOD)’ 법이라고도 한다. 자동차가 주행 중인 자전거를 추월할 때는 1.5미터 이상 간격을 두어야 한다는 법이다. 2014년 9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3피트 법안이 발효되는 등 각국에서 유사한 법안이 만들어져 시행중에 있다. 2017년 현재 이 법안이 시행되는 국가는 캐나다, 미국(25개주), 벨기에, 네덜란드, 호주, 스페인, 포르투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다. 최소추월거리는 약 1.5미터인데 프랑스의 경우 혼잡한 도심지에선 최소추월거리가 1미터이고, 그외 지역에서는 1.5미터로 규정해 놓았다.

3피트(1.5미터) 법 안내 표지판
3피트(1.5미터) 법 안내 표지판

1.5미터법은 한국에 반드시 제정되어야 한다. 자동차의 자전거 위협이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가뜩이나 도로가 좁은 한국땅에서 1.5미터나 거리를 두고 추월하는 건 말도 안된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한국보다 훨씬 도로가 좁고 열악한 유럽 도시국가에서도 이 법안이 시행되고 있음을 밝혀둔다. 정 어렵다면 프랑스처럼 도심과 비도심을 다르게 적용한다든가 하는 방안도 있다. 중요한 건 1미터냐 1.5미터냐 따위가 아니다. 이런 법안 하나하나가 결국 ‘사람 목숨 귀한 줄 아는 사회’를 만든다는 점이다. 유례없는 5월 대선을 치렀고, 우리는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단 대통령을 맞게 됐다. 새 정부에서 꼭 1.5미터 법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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