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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사람은 무엇 하러 사는가

입력
2017.05.12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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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한 가지 버릇이 있다. 몸에 밴 나쁜 버릇이야 수두룩하지만, 이건 과히 나쁘지 않기에 여기에 소개한다. 식사를 하고 난 후 빵 부스러기나 곡식 낱알 같은 건 음식 쓰레기로 버리지 않는다. 대신 모아다가 바깥에 녹지를 찾아 거기에다 뿌려주는 것이다. 그러면 머지않아 누군가가 찾아온다. 알고 왔는지 지나가다 우연히 들렀는지, 어느새 한두 마리의 새들이 바닥을 쪼고 있다. 어떤 때는 뭘 먹는지 알기 어렵지만, 또 어떤 때는 분명히 내가 던져준 그 조각을 열심히 공략하고 있기도 하다. 그럴 때면 웬만한 일의 몇 배가 되는 보람이 느껴진다. 쓰레기가 될 것을 식량으로 전환해 살린 점. 그리고 소박한 삶을 열심히 사는 작은 생명체들에게 도움을 준 점. 음식 찌꺼기로 얻는 기쁨치고 제법 쏠쏠하다.

내 작은 손길을 떠나서, 누군가가 잘 살고 있는 것 자체가 보기 좋은 모습이다. 생물마다 삶의 방식이 다르지만, 저마다의 삶에 적합한 능력을 타고 나 그 능력을 잘 발휘하며 살 때 세상은 제대로 돌아가는 듯하다. 작은 부리를 가지고 태어나 작은 씨앗을 잘 쪼아 먹는 참새처럼 말이다. 추구하는 삶과 보유한 장치가 잘 합치되었기에 참새가 참새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물들은 모두 자기 삶에 충실해 보인다. 소는 풀을 뜯고, 벌은 꽃을 찾는다. 그러느라 전부 바쁘다. 가지고 있는 능력은 하루하루의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데에 총동원되고, 신체라는 하드웨어와 정신이라는 소프트웨어는 서로 따로 놀지 않는다. 삶은 그걸 살아감으로써 자연스럽게 채워진다.

안 그런 동물이 딱 하나 있다. 당연히 우리 인간이다. 예전에도 좀 그런 경향이 있었지만 최근 들어 극심해졌다. 무엇이? 삶과 생활의 불합치가. 우리에겐 인간이라는 동물로서의 삶이 주어졌지만, 실제 생활은 그것을 전혀 따르지 않는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된다. 몸은 두 다리로 걷도록 되어있지만 모두들 어떻게든 걷지 않으려 애쓴다. 심지어는 걷기가 거의 불가능한 신발을 골라 신기도 한다. 뚫린 입으로 말을 하면 되지만 바로 옆 사람에게 문자를 보내고, 잠시 가게에 다녀오면 되지만 클릭으로 대신한다. 광대한 사고력과 기억력을 자랑하는 두뇌를 지녔지만, 검색하면 되는데 뭣 하러 저장하냐면서 아무것도 습득하지 않는다. 길을 찾는 고전적 능력은 아예 폐기처분 해버렸다. 내비게이션이 있는데도 머리로 방향감각을 찾으려는 자는 거의 야만인 취급을 당한다. 그렇다고 우리를 둘러싼 온갖 문명의 장치들을 다 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무슨 작은 고장이라도 나면 전화기를 드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양육도, 교육도, 여행도, 결혼도, 재산 및 건강관리도 모두 위탁한다. 오늘날의 삶은, 용역을 맡긴 외주 상태이다.

삶의 용역화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건 역시 식생활 부문이다. 얼마 전 쌀, 간장, 된장, 설탕 등의 요리 재료 소비는 급감한 대신 배달음식이나 간편식의 소비가 크게 늘었다는 기사가 ‘집밥 시대’의 끝을 공언하였다. 다른 언어에는 잘 있지도 않은 ‘먹고 살기’라는 표현을 입에 달고 사는 우리가 끝내 먹는 것마저 삶 밖으로 밀어낸 것이다. 편의점 도시락이 집밥을 표방할 때부터, 시켜 먹는 게 무슨 현대인의 도라도 되는 듯 부추기는 앱 선전이 난무할 때부터, 허세와 낭비가 넘치는 외식행위가 가정생활의 표준이 되었을 때부터 다 예견된 일이었다. 손수 한 요리로 집에 사람들을 초대하던 문화가 급속도로 사라질 때에도 아무런 사회적 저항력은 보이지 않았다. 하는 사람 따로, 먹는 사람 따로가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내 모든 것을 남이 해주는 세상. 남은 것은 무엇인가? 작동할 필요도 없이 덩그러니 남은 이 몸뚱이. 무엇 하러 사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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