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서울 여의도한강공원 물빛광장. 해질녘을 기다려 ‘서울밤도깨비야시장 @여의도 월드나이트마켓’ 현장을 찾았다. “미세먼지 경보가 내려진 날이라 평소 주말에 비해 한산한 편”이라는 상인의 이야기가 이상하게 들릴 정도로 강변 길은 광화문 광장처럼 붐볐다. 마포대교 서쪽으로 길을 따라 푸드트럭 45대가 맛있는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푸드트럭마다 음식을 기다리는 시민들이 긴 꼬리를 만들었다. 이날 @여의도 월드나이트마켓은 미세먼지 경보로 대개 휴장한 서울시내 서울밤도깨비야시장(네 곳) 중 유일하게 개장했다.
서울밤도깨비야시장은 2015년 시범운영을 거쳐 지난해부터 서울시가 주최한다. 올해는 여의도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근처의 ‘@DDP 청춘런웨이마켓’, 청계천 광통교 부근 ‘@청계천 타임슬립마켓’, 반포한강공원 달빛광장 주변 ‘@반포 낭만달빛마켓’ 등 네 곳에서 주말마다 열린다. @청계천 타임슬립마켓만 토요일과 일요일에 열리고 다른 세 곳은 금요일과 토요일 개장한다. 청계광장에선 ‘@청계광장 시즌마켓’이 부정기적으로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개장한다. 서울시 심사를 통과한 푸드트럭 152개가 조별로 3주마다 각 야시장을 순회한다. 지난해까지는 푸드트럭이 한 곳에 붙박이로 있어야 했지만, 올해부터는 야시장을 돌게 됐다. 장소마다 고르지 않은 매출 쏠림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여의도 월드나이트마켓이 유동인구가 가장 많고 매출도 제일 많다고 한다. 잔칫집에 구경거리가 빠질 수 없다. 손수 만든 공예품 등을 판매하는 벼룩시장이 열리고, 때로 작은 공연도 볼 수 있다.
여의도의 평소 이용객은 연인과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부부. 이날은 유모차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고, 20대가 대부분이었다.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는 오후 6시쯤부터 차례로 푸드트럭 몇 곳을 맛봤다. 45곳 전부를 맛볼 수는 없기에 높은 매출 순위를 차지한 푸드트럭 여섯 곳을 중점적으로 둘러봤다.
푸드트럭, 우습지 않다. 배부를 각오를 하고 가도 좋다. 푸드트럭 음식이라고 엉성할 것이라 여긴다면 오산. 많은 푸드트럭 ‘오너 셰프’가 소스 정도는 손수 끓여 ‘나만의 맛’을 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푸드트럭을 마련하는 초기 비용이 상당히 들고 하루 10만~20만원 선의 자릿세도 내야 하지만 일반 매장을 내는 것에 비하면 훨씬 가볍다. 적은 사람이 효율적으로 일해야 하는 좁은 공간이다 보니 인건비 같은 비용을 아껴 재료로 돌릴 수 있다.
@여의도 월드나이트마켓은 마포대교 남단 아래 물빛광장에서 시작해 서쪽으로 수변 무대 근처까지 펼쳐진다. 넓은 지역에 분포하는 만큼 자리에 따라 매출도 크게 들고 나는데, 시작점인 물빛광장 쪽 입구가 명당으로 꼽힌다. 가장 예민한 문제이기도 한 자리는 제비뽑기로 ‘공평하게’ 정한다. 행운의 명당을 차지한 ‘골드 스테이크&쉬림프(Gold Steak&Shrimp)’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스테이크 세트는 미국산 프라임 등급의 등심을 먹기 좋은 한입 크기로 잘라 구운 것에 손수 졸인 특제 소스로 맛을 냈다. 하와이안 쉬림프는 고소한 향이 매콤한 뒤끝으로 마무리된다. 메뉴에 곁들이는 나시고렝(인도네시아의 향신료를 듬뿍 넣은 볶음밥)이나 오이, 무, 적채 피클, 파프리카 파우더를 솔솔 뿌린 옥수수 구이까지, 손이 안 간 곳이 없다.
밤도깨비야시장에서 처음 푸드트럭 ‘사장님’이 된 정수현씨는 전 재산을 투자해 푸드트럭을 꾸몄다. 푸드트럭이 모여있는 곳이다 보니 눈에 띄는 외관은 필수다. “밤도깨비야시장에 지원하기 전에 준비를 위해 푸드트럭이 모이는 곳을 많이 찾아 다녔어요. 손님 입장에서 돌아다녀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이 경쟁력과 차별화인데, 푸드트럭의 외관도 음식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더라고요.” 번쩍이는 윙바디(트럭 옆 벽이 새의 날개처럼 열리는 형태)에 큼직하게 눈에 잘 띄게 배치된 간판까지 고심의 흔적이 또렷하다.
같은 줄에 자리 잡은 ‘돈블랙’은 문창살을 활용해 눈에 띄는 외관을 만들어내고 한식 푸드트럭이라는 정체성도 드러냈다. 상호대로 돼지 요리 두 가지로 승부하는데, 하나는 식사 메뉴인 삼색흑돼지구이고, 하나는 들고 다니며 먹기 좋은 간식 메뉴인 흑돼지꼬치다. 삼색흑돼지구이는 돼지고기 목살에 앞다리 30%정도를 섞어 사용한 구이 메뉴로, 직접 만든 레시피로 그때그때 준비하는 달콤 짭짤한 소스에 버무렸다. 곁들이는 새우 구이에 올라간 크림 소스와 아삭하게 익힌 버섯 같은 채소가 세 가지 색의 대비를 이룬다. 이 트럭의 오너셰프인 김훈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밤도깨비야시장에 선발됐다. 푸드트럭 경력으로 치면 햇수로 3년째다. 그는 “밤도깨비야시장에 입점한 모든 푸드트럭이 무조건 장사가 잘되는 것은 아니지만 길거리를 전전하는 것보다는 낫다”며 “밖에서 영업할 수 있는 곳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보니 올해도 야시장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밤도깨비야시장이 없어지면 푸드트럭은 더더욱 막막한 상황이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 손에는 토치를 들고 한 손으로는 고기를 뒤집으며 쉼 없이 불길을 일으키는 김씨 앞으로 또 한 번 줄이 길게 늘어섰다.
주황색 컨테이너박스 위로 야시장 깃발이 나부끼는 운영본부를 지나 주황색 텐트가 늘어선 벼룩시장을 지나면 또 한 번 푸드트럭의 줄이 이어진다. ‘테이스틸러(Tastealer)’ 트럭 앞엔 TV 두 대가 설치돼 불꽃을 끊임 없이 내보낸다. 눈에 띄는 연출이다. 이 트럭의 주력 메뉴 역시 스테이크다. 고기, 새우는 어딜 가나 진리다. 테이스틸러의 대표인 안은현씨는 정육 기술이 있는 동업자 친구의 특기를 살렸다. 1만원 선에 형성된 푸드트럭 스테이크 가격보다 20% 정도 저렴한 8,000원에 스테이크를 판매한다. 안씨는 “미국산 척아이롤을 통으로 가져다 직접 손질해 쓰기 때문에 단가를 낮출 수 있다”며 “마진을 노동력으로 대체해 저렴하지만 푸짐한 스테이크라는 차별점을 뒀다”고 말했다. 스테이크에 매시드 포테이토와 버섯 볶음을 곁들인다. 1년여 푸드트럭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곳곳의 푸드트럭을 면밀히 분석하고 미국 뉴욕의 울프강 스테이크 하우스와 피터 루거 스테이크 하우스까지 섭렵하고 찾아낸 스테이크 사이드 음식의 결론이다. 간식 메뉴로 판매하는 트러플 감자튀김도 마찬가지다. 토치로 겉을 지져낸 살치살 불초밥은 척아이롤에 포함된 특수부위인 살치살을 구이용으로만 쓰기 아까워 고안한 메뉴다.
나란히 자리잡은 ‘키친 온 휠스(Kitchen On Wheels)’는 직설적 상호가 말해주듯 업력이 오래된 푸드트럭이다. 츄러스만 팔던 때부터 메뉴 개편을 거쳐 올해로 3년째니 경력으로 치면 ‘노포’ 푸드트럭이다. 한은선씨는 “가족 아니면 젊은 연인이 주 고객층이다 보니 핫도그를 주력 메뉴로 개발했다”며 “한 손에 들고 다니며 먹을 수 있는 메뉴 중 핫도그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살짝 구워 겉이 바삭한 빵 사이에 로메인 상추를 넓게 깐 뒤 그 위에 까다롭게 고른 소시지와 볶은 양파, 치즈, 비트로 색을 낸 양배추 피클을 얹고 현란하게 소스를 뿌린 ‘인스타그래머블’(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한 핫도그를 파는 이 푸드트럭은 동선을 파악해 찾아 오는 열성 팬도 확보하고 있다.
‘두 남자의 69 스테이크’는 멀리서부터 번쩍거리는 존재감이 대단하다. 나이트클럽이나 노래방 같은 알록달록한 조명이 돌아가고 강한 리듬 따라 발끝이 춤추게 되는 음악이 쿵쿵 울린다. 모자부터 의상까지 맞춰 입은 두 요리사는 고기를 굽다 손을 번쩍 들고 춤을 추곤 하니 공연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경영을 담당하는 채은석 대표는 “같은 음식이라도 즐겁게 먹었을 때 더 맛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눈길을 잡아 끄는 연출도 중요한 경쟁력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푸드트럭 메뉴 역시 스테이크가 주종이다. 튀어야 산다. 이들의 스테이크 정식은 미국산 프라임 등급 부채살을 손질해 구워 낸다. 샐러드나 수프, 빵까지 한 데 나와 경양식당의 코스를 압축해둔 것 같다.
마포대교 쪽 반대편 입구 자리를 차지한 ‘쉬림프킹’ 역시 새우를 주력으로 선택했다. 왕영윤 대표는 대표 메뉴인 ‘하와이안 쉬림프’를 “밥 위에 매콤달콤한 새우를 올린 하와이 대표 음식 중 하나인데 푸드트럭에 적합하면서 특색 있고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다”고 소개했다. 버터와 마늘로 맛을 낸 ‘버터 새우 구이’ 역시 멀리서부터 고소한 버터향에 이끌려 손이 가는 메뉴다. 지난해 ‘예비 트럭’(선발된 트럭 중 개인 사정으로 빈 자리가 생길 경우 당일에만 투입되는 푸드트럭)으로 밤도깨비야시장에 입성해 올해로 두 해째 밤도깨비야시장에 둥지를 틀었다. 왕 대표는 “노방 영업만 하던 때도 있었는데 이윤을 남기기도 힘들고 제도적 한계 때문에 영업할 곳을 찾기도 마땅치 않았다”며 “밤도깨비야시장은 푸드트럭 사장에게는 안정적으로 영업할 수 있는 기회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푸드트럭이 밤도깨비야시장 밖으로 나가면 주변 상가 상인과 마찰이 생기고 노상 불법 주차로 주차 위반 과태료를 무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정해 합법적 영업을 보장해주는 장소도 있지만 턱없이 모자라다. 지난 정권의 규제개혁 정책에 따라 푸드트럭이 합법화된 지 3년째. 현실을 두루 돌보지 못하고 조급하게 정책을 추진한 탓에 오히려 불법 트럭을 양산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이날 밤도깨비야시장을 걸으며 젊은 ‘오너 셰프’들에게서 본 것은 도시와 공생하는 음식 축제로 성장해 가겠다는 희망과 확신이었다. 여의도엔 어느새 어둠이 내렸고 기분 좋은 포만감이 차올랐다. 맛있는 축제의 밤은 주말마다 계속된다. 10월까지 쭉.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사진=강태훈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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