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푸른하늘 은하수’ 상영회
선천성 심장병 주인공 실제 모델
양형도씨 사연 보도한 기자와
수술의사∙영화감독 등 한자리에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상영관에는 특별한 영화 한편이 상영됐다. 1984년 발표된 ‘푸른하늘 은하수’를 보기 위해서였다. 이날 참석한 40여명의 관람객들은 회한에 젖은 표정으로 낡은 필름을 보며 추억에 잠겼다.
이날 33년만에 재상영된 영화 속 주인공 ‘수행’의 실제 모델은 현재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는 양형도(47)씨다. 그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소년 시절 심장에 이상이 발견돼 큰 수술을 받았다. 1981년 당시 11세였던 그는 좌심실과 우심실 사이에 구멍이 뚫린 심실중격결손증에 동맥관개존증이 겹쳐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였다. 하지만 정확한 병명을 몰랐고 막대한 수술비를 낼 엄두도 나지 않아 손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사연을 처음 보도한 이는 임철순(65) 한국일보 전 주필이었다. 당시 사회부 기자였던 임 전 주필은 양씨의 사연을 전해 듣고 ‘섬마을의 꿈, 꺼져간다’(본보 1981년 5월 23일자)는 제목의 기사를 작성해 세상에 알렸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기사가 나간 지 하루 만에 1,000여만원의 성금이 들어왔고, 양씨는 한양대 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이날 상영회에 참석한 임 전 주필은 “기사가 나간 직후 한양대 구급차를 타고 경남 통영시 어의도로 달려가 양씨 수송에 나섰다”며 “6월 4일 수술을 받은 양씨가 한 달 뒤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자 섬마을에서 큰 잔치가 벌어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양씨의 수술 성공을 계기로 ‘심장병 어린이를 구하자’는 시리즈를 10회 연재했고, 그 결과 입사 이후 처음으로 한국기자협회 한국기자상까지 타게 됐다”며 웃었다.
양씨 사연의 파급효과는 임 전 주필의 개인적 영예로 그치지 않았다. 한국사회가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에게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된 것. 영화가 만들어지고, 새세대심장재단(현 한국심장재단)이 설립됐다. 수많은 젊은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심장병을 연구하는 촉매제가 되기도 했다.
양씨의 집도의였던 박영관(78) 우촌심뇌혈관연구재단(우촌재단) 회장도 수술 이듬해 대학병원을 나와 심장병 전문병원인 세종병원을 설립했다. 박 회장은 “당시 한국에는 돈이 없고, 수술할 병원이 없어서 치료 받지 못하는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가 약 2만명 가량 적체돼 있었다”며 “대형 대학병원을 찾지 않아도 심장병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이날 상영회를 기획한 것도 그가 설립한 우촌재단이었다. 이날 상영회에는 임 전 주필과 박 회장 외에도 영화 연출을 맡은 변장호 감독, 주연배우였던 김지숙씨 등 당시의 주역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변 감독은 “내가 만든 영화를 30여년만에 다시 스크린으로 볼 수 있어 감개무량하다”며 “심장병 어린이들의 사연을 세상에 알리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자는 일념으로 촬영에 임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바람대로 이 영화는 제23회 대종상 영화제 계몽부문 작품상을 타는 등 사회기여의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날 개인 일정 탓에 상영회에 참석하지 못한 양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시한부 인생을 살던 11세 소년이 내일 모레 50세를 바라보고 있다”며 “현재 심장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도 희망을 잃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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