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중부소방서 이성훈 소방사
2만분의 1 확률로 유전인자 일치
공대생에서 간호사, 그리고 소방관으로
요양병원 어르신들 미소 잊지 못해
“제 조혈모세포(골수)가 아니면 그 사람이 죽을 수도 있대요.”
공대를 다니다 간호사로, 이제는 소방관의 삶을 살고 있는 부산 중부소방서 이성훈(32) 소방사의 말이다. 이씨는 10일 부산의 한 병원에서 골수기증을 위해 수술대에 올랐다. 그는 “가족이 아닌 사람의 유전인자가 일치할 확률은 2만분의 1이다”며 “2008년 가을에 골수기증 서약서에 서명을 했는데 9년만이라도 연락이 와 다행이다”고 말했다.
이씨는 2008년 당시 부산의 한 대학 도시공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그는 “2학년 겨울방학 때 요양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며 “어르신들이 ‘고맙다’고 홀쭉한 얼굴로 웃으면 일이 힘들긴커녕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 때의 기억은 이씨의 진로를 바꿔놨다. 이씨는 2012년 2월 간호대학에 입학했고 졸업 후 줄곧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근무했다. 2013년 겨울을 잊지 못한다는 그는 “그날은 중환자실에서 뇌종양으로 투병 중인 20대 여성의 생일이었다”며 “지인들이 생일케이크까지 들고 와 축하해주려 했는데 갑자기 의식을 잃었고 끝내 밤을 넘기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중환자실에서 사람들의 임종을 수없이 지켜보면서도 무던해지지 않았다.
사고현장에 직접 나가 골든타임을 유지하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이씨는 2015년 봄, 소방관 특채에 지원해 2015년 6월 임관했다. 수많은 사고현장을 오가면서도 이씨는 틈틈이 주변 동료들에게 골수기증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설득했다. 그는 “동료 소방관 2명이 기증서명에 동참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씨는 골수기증 수술 하루만인 11일 퇴원했다.
부산=정치섭 기자 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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