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사고로 오른쪽 다리 절단
제프 글라스브레너 히말라야 등정
의사의 ‘두 낫 리스트’ 차례로 극복
고도 8,848m 에베레스트는 ‘신이 허락해야 오를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지난해 5월 에베레스트에 오른 제프 글라스브레너(44ㆍ미국)는 ‘신이 버린 아이’였다. 여덟 살에 오른쪽 다리 절단사고를 당한 그는 “‘신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했다”며 당시를 회상한다. 사고 37년 후 글라스브레너는 지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선 최초의 하반신 절단 장애인이 됐다. 스포츠 전문매체 SI는 글라스브레너의 히말라야 등정 다큐멘터리를 지난 3일(한국시간) 공개했다. ☞관련기사
1980년 글라스브레너는 여덟 살의 나이로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농장 잡초를 자르던 트랙터의 날에 다리가 빨려 들어갔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누워 “신발 안에 들어있는 내 발을 똑똑히 봤다”고 그는 그날을 악몽을 기억했다. 부주의가 빚은 참사였다. 그의 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죄책감을 안고 살았다. 그러나 글라스브레너는 아버지가 생명의 은인이란 걸 안다. 112km 떨어진 대형 병원으로 갈 때까지 아버지는 그의 절단된 다리를 맨손으로 지혈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과다출혈로 사망했을 것이라는 의사의 소견을 들었다.
47일 간 14번의 대수술을 받는 동안 두 번의 심정지가 왔다. 결국 등의 피부를 떼어내 다리로 붙이는 이식 수술에 성공했다. 그리고 오랜 병원생활에서 퇴원하기 직전, 글레스브레너의 인생을 흔든 종이 한 장을 받았다. 의사는 그에게 “절대 도전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와 함께 ▲단체 스포츠 ▲자전거 타기 ▲수영 세 개를 적어 건넸다. 병원에서 벗어난 글라스브레너의 인생은 이 세 가지 ‘두 낫 리스트(Do not list)’에 철저히 지배됐다.
그의 오랜 ‘복종’을 무너뜨린 건 여동생 제프 지넬(43)이었다. 지넬은 위스콘신 보스코벨 농구팀에서 한 경기 37점을 몰아넣는 농구스타였다. 동생의 활약을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글라스브레너에게 ‘나는 할 수 없을까’하는 의심이 꿈틀거렸다. 그 때 글라스브레너는 동생의 동료였던 트로이 삭스(41 ㆍ호주)를 만난다. 삭스는 당대 최고의 휠체어농구 선수다.
세 가지 ‘두낫 리스트’ 중 첫 번째 항목, ‘단체 스포츠’의 시작이었다. 글라스브레너는 삭스의 코치를 받으며 매일 체육관에 나왔다. 지독한 연습벌레였던 그는 “코트가 바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고백했다. 지독한 연습과 선천적 기량이 만났다. 휠체어 농구를 시작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아 그는 1997년 미국 휠체어농구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1998년에는 월드챔피언십 대회에 나가 정상에 올랐고 이후 두 번의 패럴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따냈다. 2003년에는 한 경기 63득점과 27리바운드를 달성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농구선수로 스페인에 진출해 활동하던 글라스브레너는 귀국 후 손으로 작동하는 자전거인 ‘핸드 바이크’를 처음 만난다. 320km를 핸드바이크로 완주하는 자선 행사에 초청 받은 것이다. 두 번째 금기인 ‘자전거 타기’가 깨지는 순간. 금기를 깨부숨과 동시에 그는 자선대회 주최자인 엘리자베스 스마일리와 결혼에 성공한다. 두 딸까지 얻은 그는 자선대회 참가를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2005년에는 트라이애슬론에 도전했다. 다리를 잃은 여덟 살 이후 한 번도 달리기와 수영을 한 적이 없던 그였다. 도전을 위해 글라스브레너 부부는 의족 전문 제작자가 사는 동네로 이사를 가는 열정까지 보였다. 마침내 ‘조깅용 다리’와 ‘수영용 다리’ 의족을 얻은 그는 25번의 트라이애슬론 경기를 완주할 수 있었다. 마침내 마지막 리스트였던 수영까지 도전해 세 가지 금기를 모두 깬 것이다. 사고 30주년이던 2010년 한 해에만 여덟 번의 경기에 참가했다. 그 중 여섯 번은 그에게 ‘두 낫 리스트’를 만들어 주었던 매디슨 병원 근처를 뛰었다.
에베레스트 등반은 인생 최고의 도전이다. 일반인도 ‘신의 가호’가 있어야 성공한다는 세계 최고봉에 마흔 네 살의 하반신 절단 장애인이 도전한 것이다. 해발 8,750m, 이른바 ‘데스존(death zone)’에서 최대의 고비가 찾아왔다. 산소 부족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에 정신적 두려움까지 더해지며 몸무게 9kg이 빠졌다. 다리 살이 함께 빠져 의족이 맞지 않았다. 그는 헐렁한 의족의 틈 사이에 양말을 채워 고정한 뒤 다시 등반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6년 5월 19일, 최초의 하반신 장애인 에베레스트 등정자가 됐다.
“무언가 다르다는 건 시험을 받는다는 걸 의미했다”며 그는 과거를 회상했다. 의사의 리스트에 복종하던 시절, 글라스브레너는 주위의 관심을 끌지 않기 위해 학교성적은 평범해야 했고 말이 많아서도 안 됐다.
하지만 에베레스트에서는 달랐다. 히말라야 마을의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그에게 다가와 의족을 신기한 듯 만지곤 “나마스테”(감사합니다) 한 마디를 할 뿐이었다.
글라스브레너는 “모든 사람이 내 사고를 비극이라 말하지만, 내겐 최고의 기회였다”고 말한다. 휠체어 농구선수에서 트라이애슬론 선수, 한 가정의 가장이자 에베레스트 등반까지 이어진 글라스브레너의 왼쪽 다리와 오른쪽 의족은 멈추지 않는다. 다음 도전은 산악 그랜드슬램(세계 7대륙 최고봉, 지구 3극점)달성이다.
오수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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