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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시대’… 공감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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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시대’… 공감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입력
2017.05.1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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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혐오예요

홍재희 지음ㆍ행성B잎새 발행

228쪽ㆍ1만5,000원

지난달 서울 홍대거리에서 열린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의 유세현장에서 성소수자 관련 손피켓을 든 시민들이 심 후보의 유세를 경청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지난달 서울 홍대거리에서 열린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의 유세현장에서 성소수자 관련 손피켓을 든 시민들이 심 후보의 유세를 경청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혐오가 난무하는 사회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과 혐오가 점점 더 당당해지는 현실을 우린 최근 몇 년 간 직접 목격했다. 3년 전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애끊는 호소를 단식으로 표현할 때 그 앞에서 ‘폭식투쟁’을 벌인 이들이 있었다. ‘된장녀’라는 단어로 한국 사회 표면으로 떠오른 여성혐오는 ‘김치녀’ ‘맘충’ 등 온갖 언어 폭력으로 확산됐을 뿐만 아니라 실제적 위협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지난해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드러났다.

영화감독 홍재희의 책 ‘그건 혐오예요’는 우리가 ‘혐오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진단한다. 책은 홍 감독이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양심적 병역거부자, 성소수자, 동물 문제에 오랫동안 천착해 온 독립영화 감독 여섯 명을 만나 나눈 대화와 자신의 생각을 담고 있다.

최근 들어 유독 혐오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를 요약해 보면 살기 힘들어져서다. 단기간 고도성장을 이룬 한국사회는 더 이상 성장 동력이 없다. 기득권층은 주변의 약자들을 배제하고 쳐내는 것으로 자신이 갖고 있는 걸 지키려 한다. 사회 권력은 ‘비장애인 이성애자 남성’을 중심으로 유지된다. 약자에 대한 혐오는 ‘소수로 인해 다수의 권리가 침해 받는다’는 논리로 정당화되곤 하는데, 저자는 ‘권리를 침해 받는 다수는 대체 누구인지’ 되묻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공감과 상상력이다. ‘무식하면 용감한 것이 아니라 폭력’이라는 저자의 말은 그 동안 자신이 보고 싶은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며 공감에 힘쓰지 않았던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일갈이다. 내 입장에서 약자인 누군가를 내려다보는 연민과 상대방의 삶을 알기 위해 노력하며 그의 입장에 서 보려는 공감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금 비장애인인 당신은 아직 장애가 없을 뿐, 사고나 재해로 인해 후천적 장애인이 될 수 있다.

대안을 찾기 위해서도 상상력이 필요하다. 군대 문제는 각각의 개성을 지닌 사람들을 한 공간에 넣고 복종을 강요한 데서부터 비롯된다. 한국은 병사 월급도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선진국에서는 징병제와 대체복무제의 혼용, 완전모병제 등으로 군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이 나라에서 다른 상상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현실에 대한 분노는 국가가 아닌 또 다른 약자들에게로 향할 뿐이다.

책 마지막 장에는 마르틴 니묄러의 시 ‘그들이 처음 왔을 때’가 적혀 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 노동조합원, 유대인을 덮쳤을 때 침묵했던 화자에게 나치가 들이닥쳤을 때 그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혐오의 시대 혐오의 대상은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고 누구든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약자가 될 수 있다. 혐오는 부끄러운 일이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건 혐오”라고 분명히 말해야 한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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