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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전략 투표 vs 소신 투표

입력
2017.05.10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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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은 ‘안풍(安風ㆍ안철수 바람)’의 진원지였다. 4ㆍ13 총선에선 호남 28개 의석 중 23석을 선물하는 녹색 돌풍을 일으켰다. 호남 홀대론에서 비롯한 반문(反文) 정서 영향이 컸다. 안 후보가 최소한 문재인 후보와 박빙의 승부를 겨룰 것으로 예상됐던 배경이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문 당선인이 안 후보를 더블스코어로 압도했다. 막판 보수 결집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작용하며 진보 유력 후보에게 표가 쏠렸다는 분석이다. ‘묻지마 몰표’는 아니었지만 확실한 정권 교체를 위한 ‘전략적 몰표’의 재연이었다.

▦ 보수 텃밭인 TK는 고심하던 전략적 선택을 접고 소신 투표 경향을 보였다. TK 표심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갈 곳을 잃고 표류해왔다. 반기문, 황교안, 안철수를 저울질하며 전략적 선택을 고심했지만 실제 투표에선 결국 보수색이 가장 짙은 후보에게 기울었다. 안철수 유승민 등 합리적인 보수 대안주자 대신 강경 보수 후보에게 50% 가까운 지지를 보냈다. 과거처럼 80% 넘는 묻지마 지지는 아니었지만 진보 후보에 대한 강한 거부감은 여전했다. 그런 점에서 TK의 선택은 맹목적 소신 투표에 가깝다.

▦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진보 진영 전략 투표의 희생자다. 그는 TV토론 선전으로 지지율이 10% 목전까지 올랐다. 그런 만큼 최소 두 자릿수 지지율을 기대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후보 선전에 위기감을 느낀 상당수 지지자가 소신 투표를 포기하면서 6.2% 득표율에 그쳤다. 그럼에도 심 후보는 역대 진보정당 후보 중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종전 최고치는 2002년 대선에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기록한 3.9%. 그도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같은 사이다 발언으로 한때 10% 넘는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막판 진보 세력의 전략적 몰표가 노무현 후보에게 쏠리면서 득표율이 예상치의 절반을 밑돌았다.

▦ 19대 대선은 영호남 지역구도에 균열을 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지역ㆍ이념별 대표주자가 흐릿한 5자구도로 치러진 데다 미증유의 탄핵에 따른 대선이라는 점이 묻지마 몰표를 막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기는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전략 투표는 기득권 양당 체제를 강화해 진영 싸움을 부추긴다. 다당제를 정착시켜 정치세력의 폭을 넓히고 지역주의를 완화하려면 소신 투표가 이뤄져야 한다. 소신 투표가 전략 투표가 되면 금상첨화겠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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