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첫날 행보는 부드러운 파격의 연속이었다. 사저에서 국회의사당으로 향하는 길이나 국회에서 청와대로 향하는 과정에 국민과 접촉면을 늘리기 위해 경호를 최소화했으며 협치를 위해 야당을 먼저 만나는 등 신선한 행보를 이어갔다.
문 대통령은 10일 19대 대통령 선거 개표가 마무리 된 직후인 오전 8시 9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전체회의를 열어 당선을 확정하면서 대통령 신분이 됐다. 이어 오전 9시 20분쯤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자택을 나서면서 대통령으로서 일정을 시작했다.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였다. 검은 정장 차림의 대통령 부부는 축하를 하기 위해 몰려든 주민들에게 일일이 다가가 웃으며 눈을 맞췄다. 주민들이 건넨 꽃걸이를 목에 걸고 밀려드는 기념 촬영에도 웃으며 응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도열해 있던 청와대 경호팀과 악수를 나눈 뒤 대통령 의전차량을 타고 동작구 국립현충원으로 이동했다. 문 대통령은 이동하는 동안에도 창문을 반쯤 내린 채 연신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고 곳곳에 모인 시민들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20여분 만에 현충원에 도착한 문 대통령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우상호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와 묘역을 둘러본 후 방명록에 ‘나라다운 나라, 든든한 대통령!’이라는 문구를 남겼다.
참배를 마친 문 대통령은 푸른 넥타이 차림으로, 영부인은 화사한 투피스 차림으로 복장을 바꾼 뒤 여의도로 향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식 행사에 앞서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당사를 찾아 정우택 원내대표를 만나는 자리에서 초당적 협조를 구하고 이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지도부도 잇따라 찾았다.
취임식은 낮 12시 여의도 국회 로텐터홀에서 간소하게 치러졌다. 취임식도 과거 대규모 취임식장에서 느껴지던 근엄한 분위기 대신 친근한 분위기가 흘렀다. 여야 지도부와 정부 관계자는 물론 일반 시민들이 모여 환호를 보내고 경호원의 제지 없이 대통령 가까이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이 곳곳에 포착됐다.
오후 1시 20분부터 1시간 동안 이어진 황교안 국무총리와의 오찬도 훈훈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그간 황 총리의 노고를 칭찬하며, 국정 운영과 관련된 사항을 허심탄회하게 질문, “특히 총리께 협력을 구한다”고 손을 내밀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마지막 일정으로 오후 2시 45분쯤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에게 보고하는 형식으로 국무총리와 국정원장, 대통령 비서실장 등 인선을 직접 발표하며 소통 의지를 피력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 첫날 통합과 소통 행보를 이어가면서 리더십 변화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대통령이 직접 국무총리 후보자 등 인선을 직접 소개한 것을 두고 신선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역대 대통령은 대국민담화 등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면 직접 언론 앞에 나섰지만 인사는 주로 청와대 홍보수석이나 대변인이 발표하는 게 관례였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앞으로도 국민께 보고할 중요한 내용은 대통령이 직접 말씀드리겠다"고 이야기했다. 이에 청와대 내부의 소통도 더 활발해질 것이라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업무를 마치고 청와대 관저가 아닌 홍은동 사저로 퇴근했다. 이와 관련 더불어민주당 선거캠프 대변인을 지낸 김경수 의원은 “청와대 관저 내 시설 정비가 마무리되지 않아 2∼3일간 홍은동 사저에 머물 것”이라고 전했다. 또 외국 정상과의 통화 일정과 외국 정상을 초청하는 정식 취임식 개최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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