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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스타’, 지도자로는 ‘재건의 스타’… 김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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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스타’, 지도자로는 ‘재건의 스타’… 김종부

입력
2017.05.1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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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부 경남FC 감독. 프로축구연맹 제공
김종부 경남FC 감독. 프로축구연맹 제공

프로축구 K리그 챌린지(2부) 경남FC 김종부(52) 감독은 어버이날인 지난 8일 고향 통영의 요양원에 있는 노모를 찾았다. 경남은 전날인 7일 대전 시티즌을 2-0으로 누르고 올 시즌 11경기 무패(8승3무)로 단독 선두를 지켰다.

김 감독은 일흔 여덟의 어머니 강덕경 씨를 농담 삼아 “국가대표 총감독님”이라 부른다. 김 감독 조카도 축구 선수 출신이라 아들과 조카 경기를 빼놓지 않고 본 어머니의 눈썰미가 전문가 못지않다는 이유에서다. 김 감독은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어머니는 3남2녀를 억척같이 키우면서도 축구 선수인 막내아들 사랑이 각별했다. 강 씨는 얼마 전까지 정신이 맑지 못해 자식들 애를 태웠는데 김 감독이 요즘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소식에 많이 호전됐다. 김 감독은 “요양원 간호사들에게 경남FC 소식을 물으며 이겼다고 하면 그렇게 좋아하신다고 하더라”고 미소 지었다. ‘비운의 스타’로 불리는 그는 선수 시절 온갖 풍파를 겪었고 그 때마다 어머니 속도 시꺼멓게 타 들어갔다. 어머니 병환이 자신 때문인 것 같아 아들은 더 죄송하다.

1983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 대회에서 김종부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3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 대회에서 김종부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에서 열리는 20세 이하(U-20) 월드컵 개막(5.20~6.11)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U-20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김 감독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 축구 대회에서 2골 2도움을 기록하며 한국을 4강에 올려놓은 주역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도 엄청난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다. 그는 “우리 때와 지금은 비교하기 힘든 환경이다. 안방에서 후배들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덕담했다.

김종부가 재기를 위해 땀 흘렸던 모습들. 왼쪽은 납 조끼를 입고 훈련하는 모습. 오른쪽은 이회택 감독과 스트레칭 하는 장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종부가 재기를 위해 땀 흘렸던 모습들. 왼쪽은 납 조끼를 입고 훈련하는 모습. 오른쪽은 이회택 감독과 스트레칭 하는 장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4강 신화 이후 34년이 지났지만 김 감독은 여전히 ‘청소년 스타’로 각인돼 있다. 한국 축구를 책임질 스트라이커로 기대를 모았지만 1986년 대우와 현대 사이의 스카우트 파동에 휘말려 2년 가까이 못 뛴 게 치명적이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해 불가리아와 조별리그에서 동점골을 넣으며 건재를 과시했고, 1988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해 재기를 노렸지만 결국 꽃피우지 못한 채 1995년, 만 서른의 나이에 쓸쓸히 은퇴했다. 프로축구 통산 81경기 6골 8도움의 기록을 남겼다.

스카우트 파동에 휘말려 뛰지 못하는 축구선수 김종부의 경기 출전을 기원하는 축구팬의 편지. 당시 김종부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스카우트 파동에 휘말려 뛰지 못하는 축구선수 김종부의 경기 출전을 기원하는 축구팬의 편지. 당시 김종부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종부의 재기를 바라는 팬들의 현수막.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종부의 재기를 바라는 팬들의 현수막.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는 지도자로 새 인생을 개척했다. 거제고에 이어 동의대와 모교인 중동고 등 학원 축구에서 잔뼈가 굵었다. 아마추어 리그인 챌린저스(K3)의 화성FC도 지도했다. 그가 맡은 팀은 모두 이류였다. 전통의 명문 거제고는 김 감독이 맡았을 때 열악한 환경이었고 동의대는 대학 최하위권이었다. 하지만 김 감독 아래서 거제고는 우승 1회, 준우승 4회를 했고 동의대는 준우승까지 차지했다. 2014년 화성FC의 우승까지 이끈 그는 그 해 대한축구협회 일반부 최우수지도자 상을 받았다. 2015년 말 경남 지휘봉을 잡으며 “선수로 못 이룬 꿈, 프로 지도자로 해내고 싶다”던 바람을 이뤘다. 경남은 심판 매수 사건으로 2016시즌 승점 10을 감점 당하고 주축 선수가 죄다 팀을 떠난 최악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김 감독은 바닥부터 다졌다.

김종부 경남FC 감독. 프로축구연맹 제공
김종부 경남FC 감독. 프로축구연맹 제공

그는 무조건 선수 눈높이에 맞춘다는 철칙을 갖고 있다. 김 감독은 “작은 선수, 큰 선수, 빠른 선수, 느린 선수까지 다양하다. 못 하는 게 있듯 장점도 있다. 장점을 최대한 살려주려 했다”고 밝혔다. 재기하려 발버둥 치던 자신의 선수 시절 경험 덕분이다.

“납 조끼를 입고 훈련하는 등 부활을 위해 안 해본 게 없었다. 하지만 무리하게 출전 욕심을 내다가 또 부상당하고. 결국 안 되더라. 가장 빛나는 20대에 최고의 활약을 못 한 아쉬움을 겪고 지도자가 되고 보니 선수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 것 같다.”

김 감독 부임 2년 째인 올 시즌 경남은 돌풍의 주역이다. 챌린지 10팀 중 최다득점(18골), 최소실점(7골)으로 가장 탄탄한 전력을 과시 중이다. 김 감독은 이제 클래식(1부) 진입을 꿈꾼다. 그는 “내년에 1부로 가서 경남 축구 부흥에 힘을 보태고 싶다”며 “선수로는 ‘비운의 스타’였지만 지도자로는 ‘성공한 축구인’으로 남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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