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지상파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 2위로 전망됐다. ‘포스트 대선’ 정국에서 그의 정치적인 입지를 보장해줄 수 있는 성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과 국정농단 책임의 한 축인 한국당의 대선 후보로 나섰다는 걸 감안하면, 의미 있는 성적인 때문이다. 더구나 1%도 안 되는 지지율로, 후보들 중 가장 마지막에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까지 제친 건 “홍준표이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너진 당을 재건한 데 만족하겠다.” 9일 오후8시 출구조사 결과가 공개되자 홍 후보는 1시간쯤 뒤 서울 송파구 자택을 나서며 때 이른 낙선 소감을 밝혔다. 이후 당사에서 연 기자회견에서도 “선거 결과를 수용한다”며 당 복원에 의의를 둔다는 말을 반복했다. 정치권은 그의 승복 선언보다 ‘당을 재건했다’는 말에 더 주목하고 있다. 스스로 ‘성공한 구원투수’라고 자평한 것이 향후 그의 행보를 짐작하게 하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대선 기간 동안 홍 후보는 귀족노조ㆍ전교조 혁파를 내세우며 보수우파 결집에 매달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격렬히 반대한 ‘태극기 부대’까지도 끌어안았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향해선 “친북좌파”라고 몰아세웠다. “이번 대선에서 보수우파가 이기지 못하면 모두 한강에 빠져 죽어야 한다”며 극한 대결도 부추겼다. 향후 문재인 정부에서 홍 후보가 견지할 태도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강한 야당’의 입지를 탄탄히 해 문재인 정부에 맞설 것이란 예상이 가능하다.
더구나 안 후보가 3위로 내려앉을 것으로 전망되면서, 야권의 힘은 홍 후보에게 쏠리게 됐다. 한국당은 옛 여당에서 졸지에 야당으로 처지가 바뀌었지만, 현재 107석으로 원내 2당이자, 제1 야당이다. 대선 전부터 당 안팎에서 홍 후보의 당권 도전설이 흘러나온 이유도 이런 의석분포에서 비롯됐다. 홍 후보는 대선 기간 관훈토론회에서 “과거에 당권을 잡아본 데다 저도 나이가 있다”며 당권 도전의 뜻이 없다고 못박았지만, 당내 관측은 그렇지 않다. 당 관계자는 “현재 친박계는 대선이 끝나자마자 치러질 전당대회에 계파 색이 강하지 않은 ‘간판’을 내세워 당권을 장악할 궁리를 하고 있다”며 “구심점이 없는 비박계에서는 홍 후보가 그 역할을 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친박계 물밑에서 벌써 대선패배 책임론을 제기할 조짐이 보이는 것도 이를 경계한 때문이다.
홍 후보가 당내 이견에도 밀어붙인 바른정당 탈당파의 복당 허용 문제도 숨은 뇌관이다. 한 의원은 “선거 기간이니 의원들이 조용했지만,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책임이 있는 의원들까지 일괄 복당 시킨 건 문제의 소지가 있다”며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는 의원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친박계에선 홍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2위로 선전한 데는 ‘친박 콘크리트 민심’이 컸다고 보고 있다. 이를 근거로 친박계가 민심의 면죄를 주장하며, 다시 전면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반면, 중도 성향이나 온건 친박계 의원들은 홍 후보를 중심으로 모이는 분위기다. 한 핵심 당직자는 “일괄 복당뿐 아니라 친박 핵심 3인방의 징계도 풀어줬기 때문에 친박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며 “더구나 지더라도 의미 있게 패배했기 때문에 친박계에서 섣불리 책임론을 제기하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 후보가 앞으로 당 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는다면, 재ㆍ보선이나 차기 서울시장에 도전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 중인 최명길 국민의당 의원이 3심에서 당선 무효형이 확정될 경우, 그의 지역구인 송파을 재보선 출마가 점쳐진다. 홍 후보는 2001년부터 세 차례 서울 동대문을에서 당선되기 이전, 1996년 송파갑에 출마해 초선 배지를 달았다. 현재 서울의 주소지도 송파구다.
당 관계자는 “홍 후보는 당분간 친박계와 긴장 관계를 유지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할 길을 도모할 것”이라며 “현재 한국당은 당 조직도, 의원 수도 명실상부한 ‘친박당’이기 때문에 대선에서 2위로 선전했다고 해도 당을 접수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