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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하지 않아 좋다... 요즘 음식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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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하지 않아 좋다... 요즘 음식 만화

입력
2017.05.0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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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탈출을 목표로 살았으나 서울살이는 만만치 않다. 수정이는 '시골의 상징' 엄마가 보내준 곶감으로 곶감말이를 만들어 먹으면서 엄마, 그리고 시골과 화해한다. 창비 제공
시골탈출을 목표로 살았으나 서울살이는 만만치 않다. 수정이는 '시골의 상징' 엄마가 보내준 곶감으로 곶감말이를 만들어 먹으면서 엄마, 그리고 시골과 화해한다. 창비 제공

“음식 그 자체, 요리하는 과정 그 자체보다는 음식을 매개로 한 사람들의 관계에 주목하고 싶었어요. 음식 만화인데 거꾸로 음식의 비중을 확 줄인 만화를 생각한 거죠.”

9일 ‘초년의 맛’(창비)을 펴낸 작가 앵무의 설명이다. 그의 말처럼 ‘초년의 맛’은 음식만화치고 특이하다. 한가지 음식에 따라 24편의 이야기를 옴니버스식으로 구성해뒀는데, 재료 고르고 요리하고 그 맛을 느끼는 과정에 대한 얘기는 거의 없다. 등장하는 음식이라는 것도 화려하고 이국적이며 복잡한 음식 대신 된장찌개, 수제비처럼 지극히 일상적인 것으로 골랐다. 아예 목캔디, 초코파이에다 자판기 커피 같은 것도 음식이라고 내놨다. “애초에 요리와 불이 등장하지 않는 만화를 목표로 했는데, 안 그래도 작품을 본 친구들이 ‘이게 무슨 음식만화냐’며 타박했다”며 웃었다.

‘음식 포르노’라 불리는 먹방 열풍이 제 아무리 강해도 ‘인생의 맛’은 어릴 적 아빠가 사준 짜장면, 함께 공차던 친구 녀석들과 어설프게 끓여먹은 라면, 비오는 날 엄마가 지져주던 부침개 같은 거다. 음식 그 자체에 대한 얘기를 뺀 대신 작가가 채워 넣은 것은 이런 스토리들이다.

스트레스 때문에 소화가 안될 때 엄마가 건네주던 매실청, 장손만 챙기던 할머니가 손녀를 위해 힘겹게 손질해가며 내놓던 오리 탕수육, 가정형편 때문에 태권도 도장을 그만둬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사주던 오므라이스, 오래 전 홀로 된 아빠가 대입에 실패한 아들에게 건네는 딱 한 잔의 맥주 같은 것들이 지면을 채운다. 오버하지 않고 단편처럼 구성된 잔잔한 이야기들이 좋다. 문학출판사인 창비가 이 작품에 주목한 이유이기도 하다. 창비 관계자는 “문학성이 짙은 만화책 출간을 차츰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만화는 모두 흑백인데 주제가 되는 음식만 컬러로 처리했다. 음식만화니까 음식을 강조하기 위해 그랬겠거니 싶은데, 실은 다른 속사정이 있다. “재료나 음식에 대한 얘기를 줄였으니 좀 더 쉽게 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이야기 구성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다른 곳에다 컬러를 칠할 만한 여력이 없었어요.” 앵무는 “머리 좀 쓰다 결국 내 발로 지옥에 걸어 들어간 셈”이라며 웃었다.

식구들끼리 빙 둘러 앉아 먹는 잔치국수는 겨울의 찬 바람을 이겨내게 해준다. 보리 제공
식구들끼리 빙 둘러 앉아 먹는 잔치국수는 겨울의 찬 바람을 이겨내게 해준다. 보리 제공

‘초년의 맛’에 비하자면 심흥아 작가의 ‘별맛 일기 1ㆍ2’(보리 발행)는 조금 더 기존 음식 만화에 가깝다. 요리를 좋아하는 열 살짜리 소년 별이가 할머니와 함께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담았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재료가 무엇인지, 어떻게 손질해서 요리해야 하는지를 세세히 일러준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요리도 특출난 건 없다. 김치말이국수, 주먹밥, 잔치국수, 수박화채처럼 집에서 간단히 해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권별로 16개씩, 32개 음식의 조리법이 담겼다.

다만 작품이 품고 있는 메시지는 만만치 않다. 별이네는 미혼모 가정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 동네로 이사와 항상 음식을 나눠먹는 미나네 가족은 다문화가족이다. 그리고 별이를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친구 연우까지 등장해 동성애 문제도 슬쩍 건드린다. 어떻게 보면 차별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들이다.

심 작가는 “사회적 약자라면 보통 소수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와 내 둘레의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한번쯤 사회적 약자가 되는 것 같다”면서 “‘별맛일기’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밝혔다. ‘잔치국수’ 편에서 별이는 “좋은 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는 국수 한 그릇. 겨울이지만, 조금도 춥지 않다”고 말한다. 요란한 음식, 호들갑스러운 맛 평가 따윈 없어도 빙 둘러 앉아 같이 밥을 먹는 식구(食口)는 늘 그렇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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