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안내원ㆍ관광 가이드
외관상ㆍ목소리 직업 착용 불가
건설 노동자ㆍ환경 미화원
가격 부담에 방역 대신 일반용
“마스크를 하고는 싶지만, 어쩔 수 없어요.”
중국발 미세먼지와 황사가 전국을 덮친 7일 오후 서울의 한 대형마트 지하2층 주차장. 외부에서 들어온 미세먼지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자동차 배기가스가 뒤섞이면서 숨 쉬는 것 자체가 답답할 정도지만, 안내원들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있었다. 차 안에서조차 마스크를 한 채 오가는 손님들과는 딴 판. 주차장에서 카트를 정리하던 아르바이트생은 “평소보다 피부가 따갑고 머리가 아프지만 고객들 응대를 해야 해서 마스크를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연일 ‘매우 나쁜’ 미세먼지에, 황사까지 기승을 부리지만 가장 기초적인 보호장비인 마스크조차 착용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주로 근로여건이 좋지 않은 야외 노동자나 업무 특성상 마스크를 쓸 수 없는 사정이 있는 사람들. 특히 노점상 등 저소득층에서는 “일회용인 마스크 구입 비용조차 부담스럽다”고 하소연이다.
개방된 공간에서 근무하면서, 주로 손님들에게 말을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마스크를 쓸 수가 없다. “마스크를 쓰면 손님들이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항의를 한다”거나 “외관상 손님을 맞이하기에 적절치 않다”는 게 이유다. 고궁 관광가이드 이모(41)씨는 “고궁에 얽힌 역사를 설명하느라 두 시간씩 쉬지 않고 말을 해야 하는데, 마스크를 쓸 수는 없는 일 아니냐”고 했다.
경제적인 이유로 ‘나쁜 공기’를 그대로 마시는 이들도 있다. 편의점이나 약국에서 파는 일회용 미세먼지 마스크는 개당 2,500~3,000원가량, 빠듯한 살림에는 이조차 상당한 부담이 된다면서 일회용을 계속 재활용하거나 아예 사지 않는 것이다. 서울 영등포시장에서 과일 좌판을 하는 한모(71)씨는 “돈 한 푼 아쉬운 처지에 어떻게 그걸 매일 사냐”며 “그냥 버틸 뿐”이라고 대답했다. “당장 죽는 것도 아닌데 돈은 뭐하게 쓰냐”는 얘기를 하는 이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에게 미세먼지용 마스크를 무료로 지급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보니 혜택을 받지 못하는 취약계층이 훨씬 많다.
하루 종일 밖에서 근무해야 하는, 건설노동자나 환경미화요원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정작 필요한 건 방역용 마스크지만, 보통 만원대가 넘어가는 터라 경제적 부담 때문에 미세먼지를 막기에는 역부족인 일반 마스크를 쓰고 있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새 정부에서는 미세먼지 문제를 그 어떤 문제보다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라며 “마스크도 정부 차원에서 생활필수품으로 인식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지난해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 연구진은 미세먼지에 1시간 노출되는 것은 담배연기를 84분간 흡입한 것과 비슷하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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