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가 가본 적이 없는 길로 접어 들었다. 기업 실적 호전과 외국인 매수에 힘 입어 ‘코스피 2,300’을 눈앞에 둔 거침 없는 상승장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단기간에 날아오른 주가를 아슬아슬하게 보는 시선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8일 2,292.76을 기록하며 이틀 연속 사상최고치를 경신했다. 2,245.61로 출발한 지수는 하루 동안 51.52포인트(2.30%)나 올랐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프랑스 대선에서 중도 성향의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가 승리하며 프렉시트(프랑스의 유럽연합 탈퇴) 우려가 줄어든 데다가 9일 대선을 앞두고 새 정부의 정책 기대감도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날도 장을 이끈 건 외국인이었다. 외국인은 5,448억원, 기관은 854억원을 순매수했고 개인은 6,640억원을 순매도했다. 외국인은 5월 들어 장이 열린 3거래일 동안 무려 1조원이 넘는 국내 주식을 쓸어 담았다. 지난해 외국인의 순매수액이 총 11조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 행보다. 박희정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달 들어 신흥국 증시에 외국인 자금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며 “연초 글로벌 증시가 올라도 소외 받던 국내 증시가 최근엔 글로벌 시장보다 더 강하게 상승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날 장 막판 큰 폭의 매수세가 유입되며 지수가 급등했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오후 들어 외국인의 프로그램 매수(전산 프로그램에 따라 기계적으로 수십 종목씩 묶어 거래하는 것)가 급증한 반면 다른 날보다 기관과 개인의 매도량은 적었던 영향에 주가가 쭉 올라갈 수 있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7거래일 연속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전날(227만6,000원)보다 3.3%(7만5,000원)나 오른 235만1,000원까지 치솟았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19일 이후 코스피 상승치의 절반은 삼성전자가 견인한 셈"이라며 "전기전자(IT) 업종의 상승 추세가 꺾이지 않는 한 코스피의 상승세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코스피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이어가면서 곧 하락장이 나올 것으로 점치는 투자자도 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대차거래 잔고 금액은 지난 4일 기준 71조8,389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주식을 빌려 파는 대차거래를 한 뒤 주가가 실제로 하락하면 싼값에 다시 사 갚는 공매도 투자 대기 자금이 많다는 이야기다. 올해 초 48조원 수준이던 대차거래 잔고는 지난 3월 60조원을 넘어섰고 지난달에 70조원을 돌파했다. 올 들어 코스피시장에서 대차거래가 많이 이뤄진 종목은 SK하이닉스(3조2,897억원) 하나금융지주(1조3,489억원) LG디스플레이(8,673억원) 우리은행(8,013억원) 등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박스권 학습 효과’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센터장은 “그 동안 증시가 워낙 박스권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과거에 비춰 판단할 때 이 정도면 박스권의 상단이고 주식을 팔아 차익실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대차거래 방식으로 대응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투자금융업계 관계자는 “주가가 사상 최고라는 것은 더 이상 주가 상승을 저지할 매물도 없다는 뜻”이라며 증시가 어디까지 상승할 지 예단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권재희 기자 luden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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