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9일 개봉)에서 배우 고수(40)는 존재로서 하나의 미장센이다. 그의 얼굴에 드리운 짙은 음영이 영화 속 1940년대 경성의 클래식하고도 음울한 정취와 어우러지며 서스펜스를 자아낸다. 그는 자신의 잘생긴 외모를 연기로 변주해내는 방법을 아는 배우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고수는 “그 시대만의 독특한 분위기에 끌렸다”며 “조선과 일제, 서양의 문물과 가치관이 혼재된 시대상을 상상하면서 연기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경성 최고의 갑부 남도진(김주혁)이 자신의 운전수 최승만(고수)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면서 시작된다.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는 피해자의 잘려나간 손가락뿐. 시체 없는 살인사건을 두고 펼쳐지는 법정공방과 최승만의 미스터리한 과거사가 교차편집되며 관객을 미궁에 빠뜨린다. 극중극 구성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할 뿐 아니라 문학적 정서까지 품어낸다. 고수도 “2~3개 작품을 합친 듯한 서술 구조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콕 짚었다. “최승만은 어떻게 남도진의 운전수가 됐을까, 둘 사이엔 무슨 사연이 있을까, 살인사건의 시체는 어디로 간 걸까… 의문은 점점 쌓여가지만 답은 마지막에 가서야 알 수 있어요. 그 전까지는 모든 게 스포일러라 저도 말을 아낄 수밖에 없네요.”
마술쇼로 생계를 꾸렸던 최승만의 과거를 표현하기 위해 고수는 마술과 저글링, 탭댄스도 익혔다. 마술이란 설정은 ‘무엇이 진실이고 가짜인가’라는 질문과 연결되며 엔딩에서 ‘믿음’에 대한 메시지로 확장된다. 손동작 하나도 허투루 할 수 없었던 이유다. 그런데 아쉽게도 탭댄스 장면은 몽땅 편집됐다. “제 춤솜씨가 볼만한 수준이면 아마 영화에 담았겠죠? 하하하.” 그는 “몸으로 하는 연기를 좋아한다”며 “언젠가 작품에서 꼭 춤을 춰보고 싶다”고 다시 도전 의지를 내비쳤다.
새로운 도전은 요즘 고수의 최대 관심사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보폭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 영화 ‘덕혜옹주’에 이우 왕자 역으로 특별출연한 것도 이런 갈망 때문이었다. 이젠 캐릭터의 비중보다는 그 쓰임새를 중요시한다. “최근 선보인 ‘루시드 드림’부터 ‘석조저택 살인사건’과 최근 촬영을 마친 ‘남한산성’까지, 막연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 덤볐는데 쉬운 캐릭터는 하나도 없었어요. 지금은 많이 도전하고 경험해야 하는 시기라고 봐요.”
그에게 “새로운 다작 배우로 등극하는 추세”라고 덕담을 건네니 “사람들이 계속 나를 보고 싶어하기 때문 아니겠냐”고 너스레를 떨며 화통하게 웃었다. 워낙 진중한 이미지라 조금은 심심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선입견을 깨뜨리는 의외의 입담이다. 고수는 “편안한 자리에선 아낌없이 다 보여주는 편”이라며 “한번 마음을 열면 과하다 싶게 열기 때문에 조심하려 했던 것”이라고 했다.
은근히 유머러스하고 곱씹으면 더 웃긴 그의 입담은 마무리 인사에서 폭발했다. “9일이 되면 다들 오전에 꼭 투표하시고, 오후엔 ‘석조저택 살인사건’을 보세요. 그리고 밤엔 개표방송 보면 됩니다. 스케줄이 완벽하네요. 15세 이상인 분들은 모두 이렇게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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