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봉문학상 심사 기간이라는 것도 잊고 있었어요. 워낙 쟁쟁한 분들이 책을 많이 낸 터라 수상은 기대도 하지 않았거든요.” 5일 서울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김형중 조선대 국문과 교수는 “(평론가가 된 후) ‘내가 이 상을 언젠가 받을 수 있을까?’ 기대해 본 적은 있지만,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언젠가 김형중이 팔봉상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는, 김 교수 개인 뿐 아니라 문단의 거의 모든 관계자들이 갖고 있었을 터다. 김 교수는 2000년 문학동네 신인상 평론부문에 당선된 후 ‘켄타우로스의 비평’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내리 평론집 5권을 내며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평론집은 공통적으로 동시대 빛나는 작품을 찾고 그 작품들을 통해 시대의 징후를 읽어낸다. 탄탄한 이론, 유려한 문체로 독자를 조목조목 설득한다. ‘정교한 이론적 세공을 통해 텍스트의 심부로 접근한다’는 심사평은 수상작뿐만 아니라 김형중의 다른 글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김 교수는 스스로 “연구자보다 현장 비평가라는 자의식이 강하다”라고 말했다.
수상작 ‘후르비네크의 혀’ 서론에는 김 교수가 이토록 정력적으로 ‘문학을 하게 된’ 배경이 소개돼있다. ‘1980년대(…) 그 시기는 ‘문학’이란 단어가 ‘운동’이란 단어의 접두사 역할을 해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던 때였고, 그래서 나는 ‘문학운동’을 하기 위해 즉 세계를 바꾸기 위해 문학을 한다고 믿었다.’
그는 “공장가서 노동자가 될 자신은 없었고, 우리 언어로 하는 국문학을 (전공)하는 게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에) 직접적이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군대 다녀와서 ‘문학이 사회변혁에 참여해야 한다’, 나아가 ‘문학이 직접적으로 사회변혁을 이룰 수 있다’는 제 믿음이 단순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지금도 문학이 여전히 정치적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이제는 ‘문학과 정치 사이에 훨씬 더 복잡한 매개, 언어가 개입하기 마련’이라고 생각하죠.”
대학원 시절 막 번역되기 시작한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의 저서가 집단과 개인 사이, 정치와 문학 사이의 ‘복잡한 매개’를 설명해주는 방향키가 됐다. 그는 “언어, 정치사회, 개인 심리의 세 가지 축을 아우르는 뭔가를 찾아 헤맨 것 같다”고 덧붙였다.
수상작은 김 교수의 이런 이력과 내공이 듬뿍 담겨 있다. 제목의 ‘후르비네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혀 있던 한 소년의 이름이다. 국적이 없는 언어로 비명과 신음 같은, 다시 말해 비언어로 이야기하는 아이다.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채 말이 되지 못하는 증언의 자리, 소년의 공백이 오히려 모든 것을 말해주는 상황에 그는 주목한다. 김 교수는 “저에게 문학은 후르비네크의 혀”라고 말했다.
평론집은 광주민주화운동부터 세월호까지 한국사회 트라우마를 문학이 어떻게 기록하고 그래서 어떤 문학적 형식을 획득했는지 소개한다. 최근의 몇몇 ‘5ㆍ18 소설’이 실패한 이유를 분석하고, 살아남은 자들의 진술의 공백을 ‘노래’로 드러낸 최윤, 공선옥, 한강의 소설을 통해 ‘서사가 아니라 다양한 형식이 문학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김 교수는 “세월호, 5ㆍ18, 위안부 같은 사실을 모티프로 한 작품을 비평을 할 때는 늘 조심한다. (트라우마를) 글쓰기의 소재로 삼으면 실패하게 되기 때문이다. 세월호 관련 비평은 울면서 썼다”고 말했다. “팔봉상을 받게 되면 중견 비평가가 되는 것 같더라고요. 수상 소식 듣고 이제 가급적이면 제가 쓰는 글과 행동의 거리를 좁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는 만큼 말하고, 말한 만큼 행동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듭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김형중 교수는
▦1968년 광주 출생 ▦전남대 영문과 졸업, 동대학원 국문과 박사 ▦2000년 문학동네 신인상 평론부문 당선으로 등단 ▦평론집 ‘켄타우로스의 비평’ ‘변장한 유토피아’ ‘단 한 권의 책’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이론서 ‘소설과 정신분석’, 에세이 ‘평론가 K는 광주에서만 살았다’ ▦소천비평문학상 수상 ▦현 조선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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