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주민 300여명 보금자리 잃어
한때 교도소 앞까지 번지기도
건조경보 속 초속 15m 강풍
19시간 만에 겨우 큰 불길 잡았지만
강풍 타고 불씨 되살아나 긴장
삼척서도 산림 100㏊ 태우고
화약고 위협해 밤샘 사투
상주 산불 대피 중 1명 숨져
헬기 16대ㆍ인력 1600명 투입 진화
“갑작스레 불이 한옥을 덮쳐 고무신만 신고 몸만 겨우 빠져 나왔다. 다급한 나머지 부모님 영정과 족보를 챙기지 못해 조상님 볼 면목이 없게 됐다.(최종필ㆍ74ㆍ강원 강릉시)“
황금연휴 막바지 주말에 강원 강릉과 삼척, 경북 상주에 잇따라 산불이 발생, 1명이 숨지고 축구장 220개에 해당하는 산림 163㏊가 잿더미가 됐다. 건조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초속 15m에 가까운 강풍으로 산불 초동진화에 실패하면서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6일 오후 3시32분쯤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에서 발생한 산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성산면 금산리, 관음리, 위촌리 일대 민가 30채를 집어 삼켰다. 삽시간에 마을을 덮친 화마로 주민 311명이 보금자리를 잃었다. 이 불은 밤새 강릉교도소 담장 앞까지 번져 교정당국이 한 때 재소자 이감을 검토하기도 했다. 7일 오전 10시36분쯤 큰 불이 잡히기 까지 무려 19시간이 걸렸고, 축구장 70개에 해당하는 산림 50㏊가 초토화됐다. 산림당국은 실화로 인해 붙은 불이 초속 15m가 넘는 서풍을 타고 삽시간에 번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27시간 만인 이날 오후 6시쯤 당국은 완전 진화를 발표했지만, 강릉 성산면 어흘리 등지의 불씨가 강풍을 타고 곳곳에서 되살아나 주민들은 밤늦게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재발화한 어흘리 대관령박물관 인근은 지난 6일 오후 최초 발화지점과 가까운 곳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이 일대에 통제선을 설치해 차량 진입을 차단하고 있다.
한 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은 강릉 관음리 등 피해지역 주민들은 악몽 같은 하루를 기억하며 몸서리쳤다. 강릉 성산초교로 대피한 박정균(88) 할머니는 “순식간에 수십 미터를 날아가는 불을 피해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딸과 함께 몸만 겨우 빠져 나왔다”며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런 난리는 처음”이라고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앞서 이날 오전 11시42분쯤 강원 삼척시 도계읍 정리 야산에서도 실화로 추정되는 불이나 산림 100㏊를 태우고 폐가 2채가 전소됐다. 불길이 좀처럼 잡히지 않으면서 도계읍 늑구2리 주민 20여 명이 안전지대로 대피하기도 했다. 김세욱(70) 늑구2리 이장은 “인력이 현장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아 헬기에 의존해 산불진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도계 산불은 한 때 광산용 폭약과 뇌관을 다량 보유한 경동광업소 화약고를 위협, 진화인력이 밤새 사투를 벌인 끝에 아찔한 순간을 모면했다.
6일 오후 2시10분쯤 경북 상주시 사벌면 덕가리 한 과수원에서도 산불이 발생, 20여 시간 만인 7일 오전 10시38분쯤 큰 불길이 잡혔다. 쓰레기 소각 중 야산으로 옮겨 붙은 이 불로 인해 13㏊가 탔고, 김모(60ㆍ여ㆍ대구 동구)씨가 대피 중 발을 헛디뎌 산 아래로 떨어져 숨졌다. 장모(64)씨 등 2명은 화상을 입고 치료 중이다. 불이 나자 당국은 헬기 16대와 소방차 10대, 인력 1,600여 명을 투입해 불길을 잡았다. 사벌면 매호1리와 퇴강2리, 함창읍 하갈리 등 5개 마을 123가구 215명이 화마를 피해 인근 마을회관 등지로 대피했다 이날 오전 10시 귀가했다. 경찰과 산림당국은 농산물 부산물을 소각하다 불을 낸 혐의로 김모(75)씨를 붙잡아 조사 중이다.
한편 7일 오후 7시30분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지역인 경북 성주군 초전면 성주골프장 옆 달마산에서 불이 나 공무원과 군인 등 100여명이 진화작업을 벌였다. 이날 오후 2시50분쯤 경북 영덕군 영해면 사진리 영해해안도로 인근 야산에서도 불길이 일어 임야 3㏊가량이 소실됐다.
강릉=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
상주=전준호 기자 jhju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