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사임당, 빛의 일기'('사임당')가 아쉬운 성적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4일 마지막회 시청률은 8.2%(닐슨코리아 기준)로 지난 방송(8.4%)보다 떨어졌다. 4일 방송에서는 그간 이별과 재회를 반복한 사임당(이영애)과 이겸(송승헌)이 이탈리아에서 재회하는 상상이 그려졌다. 이국적 배경에 한복을 입은 두 사람의 모습이 아름답고 애틋하게 표현됐지만, KBS '추리의 여왕'에 시청률 1위 자리를 내준 채 조용히 종영을 맞았다.
'사임당'은 배우 이영애가 13년 만에 복귀하는 사극 드라마로 주목 받았다. 200억원이 넘는 제작비와 중국 진출을 고려한 사전제작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더해져 '제2의 대장금'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소문난 잔칫집에는 먹을 것이 없었다. '사임당'은 개연성 부족한 전개와 느린 속도로 시청자를 설득하지 못했다. 제작진은 방영 중반 드라마를 재편집하고 30부작을 28부작으로 축소하는 결단을 내렸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시청률 2위를 넘지 못하고 쓸쓸하게 퇴장했다.
이영애의 스타성을 의심하기는 아직 이르다. 이영애는 "라면 먹고 갈래요?"(영화 '봄날은 간다')라는 애드리브로 국민적인 유행어를 만들었고, 청순하지만 강단 있는 여성상(MBC 드라마 '대장금')을 연기해 한류 스타로 자리잡았다. ‘사임당’의 부진에 갈증을 느끼는 대중이라면 ‘산소 같은 여자’ 이영애의 옛 영광을 떠올릴 만하다. 이영애의 대표작을 돌아봤다.
1. 드라마 '불꽃' (2000)
SBS '인생은 아름다워'(2010) '사랑과 야망'(2006), KBS2 '엄마가 뿔났다'(2008)의 김수현 작가가 집필한 32부작 미니시리즈다. 평범한 여주인공 지현(이영애)이 훈훈한 외모의 재벌 2세 종혁(차인표)과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지만, 재벌가의 혹독한 시집살이에 스트레스를 받아 유산까지 한다.
'불꽃'은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를 넘어 신데렐라의 결혼 생활 수난기를 그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지현은 시집 어른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하녀처럼 옆에서 시중을 들고 며느리를 무시하고 혐오하는 시어머니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이영애는 조신하고 차분한 행동으로 며느리의 표본을 보이면서도 다른 남자와 불륜에 빠져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으로 세밀한 감정 연기를 펼쳤다. 자신을 잃어버린 채 한 집안의 며느리로만 살아야 하는 여성의 삶은 주부 시청자들의 공감을 샀다. '불꽃'은 당시 드라마로서는 파격적인 애정 표현으로도 화제가 됐다. 어린이 방송이 나오는 시간대에 남녀주인공이 호텔에서 진한 애정 표현을 하는 장면을 예고편으로 내보내 논란이 되기도 했다.
2.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2000)
남북 분단의 현실을 담은 영화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북측 초소에서 북한 초소병(신하균)이 한국군 이수혁(이병헌)총상을 입고 살해되는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북한은 이수혁의 기습공격으로, 남한은 북한에 납치된 이수혁이 탈출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각각 엇갈린 주장을 한다. 유엔 등은 중립국 스위스의 한국계 소령 소피(이영애)를 책임수사관으로 임명해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려 한다. 한국에 입국한 소피는 비협조적인 남한과 북한 당국의 태도 때문에 수사에 어려움을 겪는다. 어렵게 사건 당사자들을 만나지만 서로 상반된 진술을 해 수사는 점점 미궁에 빠진다.
북한군의 말투를 감칠맛 나게 소화한 배우 송강호와 신하균의 연기가 호평 받았고, 강단 있게 수사를 진행하는 이영애의 연기도 화제가 됐다. 청순한 외모와 묘하게 어우러진 지성미와 카리스마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영애는 이 작품으로 충무로 관계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어 영화배우로서의 잠재력을 입증했다.
3. 드라마 '대장금'(2003)
한복 입은 이영애를 한류 스타로 만들어 준 사극이다. 방송 당시 국내에선 시청률 50%를 넘어서며 인기를 끌었고, 중국어권과 동남아, 아프리카, 유럽 등에 수출돼 3조원이 넘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했다. '사임당'이 방영 초반 해외 진출을 모색한 것도 '대장금'의 이영애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대장금은 조선시대 중종을 보살폈던 주치의 장금의 삶을 재구성한 내용으로, 장금이 수라간 궁녀로 궁궐에 들어가 최초 어의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치열한 궁중의 정치 암투보다는 요리 대결과 장금이가 위기를 헤쳐 나가는 과정 등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소재를 긴장감 넘치게 그려 몰입도를 높였다. 장금이가 궁중 요리를 만드는 장면을 화려하게 만들어 보는 재미를 살린 것도 인기의 비결이었다.
'대장금'으로 이영애는 한복이 잘 어울리는 스타라는 수식어를 얻었는데, 이는 우연이 아니다. 2003년 연출을 맡은 이병훈 PD는 카메라 테스트에서 이영애에게 어울리는 색을 찾기 위해 50벌이 넘는 한복을 갈아입게 했다고 한다. 이영애에게 녹색이 가장 어울린다는 결과가 나오자 장금이 의상을 녹색 저고리에 남색 치마로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4. 영화 '친절한 금자씨'(2005)
"너나 잘하세요."
착하고 순수한 이미지가 강했던 이영애가 도도하게 변신했다. 영화 속 금자(이영애)는 13년 수감 생활을 마치고 나오며 전도사(김병옥)가 건네는 두부도 거부한 채 "너나 잘 하라"는 조롱을 던진다. 금자는 자신의 고교시절 선생님이었던 백 선생(최민식) 때문에 20세부터 억울한 옥살이를 한다. 모범 수감자로 생활하고 출소한 그는 치밀하게 준비한 복수를 실행한다. 교도소에서 금자의 도움을 받았던 동료들이 금자를 돕는다.
이영애는 공개 수배 전단지 속 흉악범의 외모가 아니라 예쁘고 상냥한 살인자라는 콘셉트로 매력적 악역을 구현했다. 이영애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는 금자의 권태로운 모습을 극대화했다. 순수한 표정으로 잔인한 복수행각을 벌이는 금자의 모습에서 묘한 이질감도 느낄 수 있다. 특히 "예뻐야 돼, 뭐든지" "천사님, 저 여기 있어요"와 같이 천진한 표정으로 내뱉는 서늘한 대사들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영애는 이 영화로 제26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제38회 시체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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