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ㆍ시진핑과 통화 경위 공개
탄핵 위기에 몰리자 반전카드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등 강대국 지도자들과 연이은 전화통화로 몸값을 올리고 있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이들과의 통화 경위를 상세히 소개하고 나섰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의장으로서 외교적 입지를 확대하면서 동시에 필리핀 의회의 탄핵 움직임 등 내부의 ‘반(反) 두테르테’ 기류를 차단하기 위한 노림수로 보인다.
5일 필리핀스타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두테르테 대통령은 전날 필리핀 다바오시의 한 행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시진핑 주석과 전화통화를 했다”고 밝혔다. 북한 문제를 놓고 그가 시 주석과 통화한 것은 ‘대중 압박에 동참해 달라’는 세계 최강국 미국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한 지 나흘만인 지난 3일 시 주석과 통화했다. 그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 “아세안은 물론이고 트럼프 대통령도 시 주석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실제 가장 큰 효과는 시 주석이 개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한반도 긴장 완화의 열쇠를 쥔 시 주석이 움직이도록 하는 데 자신이 기여했다는 뜻이다. 그는 또 한반도 상황과 관련, 트럼프 대통령이 긴장 완화를 위해 시 주석과 북한 지도자가 대화하기를 원한다는 사실도 공개하며, 자신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했다.
특히 두테르테 대통령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미국에 초청한 것과 관련, “러시아에도 가야 하고 이스라엘 지도자도 가서 만나야 한다”며 확답을 주지 않는 등 몸값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에르네스토 아벨라 대통령궁 대변인은 두테르테 대통령과 미ㆍ중 정상의 잇따른 통화에 대해 “두테르테 대통령이 역내 평화 유지에 주요 역할을 하는 정치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대내적으로는 의회의 탄핵 심판대에 오르는 등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필리핀 하원이 이달 정기 회기에서 두테르테 대통령 탄핵안을 최우선으로 심의키로 했기 때문이다. 다수당 대표와 법사위원장이 이달 내 두테르테 대통령 탄핵안 심의를 끝내기로 의견을 모았다.
탄핵안은 앞서 게리 알레하노 야당 의원이 지난 3월 “두테르테 대통령은 ‘마약과의 유혈전쟁’을 벌이며 수천 명의 마약사범을 즉결 처형했으며, 신고하지 않은 거액의 은행 계좌를 보유하는 등 국민의 신뢰를 배반했다”며 발의했고, 지난달 16일 탄핵을 요구하는 의원 목록이 하원에 제출되면서 탄핵 움직임은 본격화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실제 탄핵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현지 분위기다. 두테르테 지지자들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고,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그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도 상당하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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