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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청년의 죽음, 오로지 이스라엘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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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청년의 죽음, 오로지 이스라엘 때문인가

입력
2017.05.05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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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을 대신해 지난달 27일 요르단강 서안지구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 당국에 항의 시위를 펼치던 팔레스타인 소년이 이스라엘 국경 경찰에 붙잡혀 연행되고 있다. AP 연합뉴스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을 대신해 지난달 27일 요르단강 서안지구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 당국에 항의 시위를 펼치던 팔레스타인 소년이 이스라엘 국경 경찰에 붙잡혀 연행되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 워싱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수반의 첫 회동이 이뤄진 3일(현지시간), 이스라엘 교도소에서는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이 16일째 단식 투쟁을 진행하고 있었다. 지난달 17일 시작된 이 투쟁에 참여하고 있는 수감자는 전체 팔레스타인 정치범의 넷 중 하나꼴인 1,100여명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단식 투쟁의 주 요구사항은 이스라엘 당국이 인권 보장, 처우 개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비난의 화살은 자치정부에게도 날아들었다. 수감자들은 앞서 3월 약사이자 팔레스타인 해방운동가였던 바셀 알 아라즈(31) 암살 배후로 자치정부와 이스라엘 간 ‘안보 공조’ 체제를 지목했다. 자치정부가 자신들의 무기 소지ㆍ거래를 금지하고 기소하는 등 저항 활동을 탄압해 이스라엘 당국에 협력하는 안보 공조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고 성토한 것이다.

아라즈의 죽음 뒤에 안보 공조가 있었다는 것은 자치정부가 스스로 ‘자랑’해온 사안이다. 아라즈가 해방운동 중 테러모의 혐의로 체포된 것은 지난해 4월. 당시 아바스 자치정부 수반은 독일 주간 슈피겔과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의 요청에 따라 테러를 기획한 팔레스타인 청년 3명을 체포했다”며 안보 공조가 성공적으로 이뤄졌음을 밝혔다. 아라즈는 기소도 재판도 없이 팔레스타인 교도소에 수감된 지 5개월 만에 단식 투쟁에 돌입했고, 투쟁이 세간의 주목을 받으면서 자치정부는 아라즈와 동료 수감자 5명을 석방했다. 하지만 자유를 얻은 것도 잠시, 함께 풀려난 수감자들은 이번엔 이스라엘에 체포됐고 겨우 피신한 아라즈는 올해 3월 이스라엘군에 습격 당해 10여 발의 총탄을 맞고 목숨을 잃었다. 특히 아라즈가 자치정부의 관공서가 밀집한 서안지구 알비레에서 사살되면서, 당국이 이스라엘군의 습격을 묵인했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에 ‘자치정부가 시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이스라엘의 하수인이 됐다’며 격하게 분노하고 있다.

두 당국은 실제 계속된 정치적 대립 속에서도 안보 공조는 철칙처럼 지켜오고 있다. 양국의 이러한 행보는 최근 요르단강 서안지구 및 동예루살렘의 유대인 정착촌 문제를 둘러싼 대립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지난해 12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스라엘의 유대인 정착촌 건설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자, 이스라엘은 즉각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모든 ‘협력’ 관계를 끊겠다며 반발했다. 팔레스타인 국경을 통한 인적ㆍ물적 이동이 불가능해지는 전격적인 협력 중단 선언이었으나, 이 와중에도 아비그도르 리베르만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정부군에 “안보 공조만큼은 계속하라”고 명령했다. 자치정부 또한 협력 중단에 반발하면서도 안보 공조는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치정부의 안보 공조 선언은 최근 한 두 해의 일이 아니다. 아랍학연구소(ASI)가 운영하는 독립 매체 자달리야는 2003년 아바스가 자치정부 첫 총리로 선출된 이래 단기적인 정치적, 개인적 이득을 위해 이스라엘에 협력하는 노선을 선택해 왔다고 고발했다. 실용주의 노선의 아바스 수반은 공공연히 “안보 공조가 신성하다”라며 정치 사안에서 이스라엘과 합의에 이르지 못 하더라도 공조만큼은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2014년 7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 당시 서안지구 전역에서 쏟아져 나오던 시위대를 폭압적으로 진압, 체포했던 것도 자치정부였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영문학자이자 팔레스타인 해방운동가로 활동했던 ‘오리엔탈리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는 일찍이 1994년 한 인터뷰에서 자치정부의 안보 공조 현실을 개탄했다. 사이드에 따르면 역대 주요 해방운동에서 집권 세력은 안보 공조 거부라는 명확한 원칙을 지켰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 체제를 종식시켰던 흑인해방운동조직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정부를 구성하고 통제권을 얻기까지 경찰력에 가담하길 거부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반면 자치정부의 전신 격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부끄럽게도 20세기 이래 독립이 이뤄지기도 전에 점령군의 협력자로 돌아선 유일한 해방운동 지도부로 기록되고 있다.

뎡야핑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뎡야핑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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