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8 64GB 번이 표인봉 50에 졸업했습니다. ㅅㄷㄹ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에겐 외계어나 다름 없는 이 문장은 “갤럭시S8 64기가바이트(GB)를 번호이동으로 페이백 50만원에 구매했다”는 뜻이다. ‘표인봉’은 페이백(처음 살 때 지불한 돈을 추후 돌려받는 것)에서 자음을 따 만든 은어이고, ‘ㅅㄷㄹ’은 이동통신 유통점이 밀집한 서울 신도림 지역을 말한다.
최근 며칠 동안 휴대폰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와 비슷한 글이 급증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S8에 불법 보조금이 대거 살포돼 실구매가가 10만원대까지 떨어지자 관련 정보와 구매 후기가 잇따라 올라온 것이다. 정부 단속이 뜸한 황금연휴에 벌어진 일명 ‘갤럭시S8 대란’으로 이동통신 시장은 진흙탕이 됐다.
4일 이동통신업계에 따르면 3일 하루 동안 이동통신 3사의 번호이동 건수는 방송통신위원회가 과열 기준으로 삼는 2만4,000건을 훌쩍 뛰어넘는 2만8,627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갤럭시S8 개통이 시작된 지난달 18일(4만6,380건) 이후 최고이며, 지난해부터 따지면 4번째로 많은 수치다. 인기 스마트폰 출시일이 아닌데도 번호이동이 급증한 건 이례적이다. 지난해 애플 아이폰7 출시 사흘 뒤인 10월 24일 이동통신 3사의 번호이동 건수가 2만9,466건을 기록한 적이 있지만, 이는 전날(23일)이 전산 휴무일이라 처리되지 못한 예약판매 개통 잔여 물량이 많았던 영향이 컸다.
통신시장의 이상 과열은 갤럭시S8 출시 이후 강화된 방통위 감시가 연휴에 접어들어 느슨해지자 유통점들이 갤럭시S8ㆍS8플러스에 앞다퉈 50만~60만원대 불법 보조금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출고가 93만5,000원인 갤럭시S8 64GB는 실구매가가 10만원대까지 뚝 떨어졌다. 밴드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매장 정보가 은밀히 공유되고, 특정 시간대에만 영업하는 ‘떴다방’식 판매가 횡행했다. 업계 관계자는 “한 통신사가 보조금을 크게 올리면 다른 통신사도 가입자를 잃지 않기 위해 보조금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에 방통위는 4일 이통 3사 관계자들을 소집해 재발 방지를 당부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방통위가 이번 사태를 부추긴 것으로 지목하고 있다. 현재 방통위는 위원장을 비롯해 상임위원 5명 중 2명이 공석이어서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능한 상태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경고 조치가 효력이 있겠느냐”며 “당장은 방통위 눈치를 보겠지만 언제든 대란이 재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갤럭시S8를 제 값에 산 소비자들의 불만은 들끓고 있다. 갤럭시S8플러스 이용자인 김모(34)씨는 “2주 만에 가격이 50만원 가까이 떨어지니 황당하다”며 “일찍 산 사람만 호갱(호구와 고객을 합친 말)이 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온라인에는 “다시는 스마트폰을 예약 구매하지 않을 것”이라는 글도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