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고 3代 사는 시댁에 입성… 친구들 “시누이도 있는데…” 걱정
남편은 집안일에 담 쌓고 있지만… 손자들 육아까지 도맡은 시어머니
부드럽고 자상한 시아버지 있어 직장 다니는 맏며느리도 살만해요
한국에서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각종 기념일이 이어지는 5월은 가정의 달이다. 베트남에도 비슷한 기념일이 많다. 어머니의 날(5월 둘째 일요일), 어린이날(국제 아동의 날ㆍ6월 1일), 아버지의 날(6월 셋째 일요일)은 물론, 가정의 날(6월 28일)을 따로 정해 놓았다. 날짜만 다를 뿐 한국처럼 스승의 날(11월 20일)도 있다. 세분화한 기념일은 공동운명체로서 가족이라는 틀이 베트남인들의 삶에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베트남 가족 문화도 점쳐 변모하고 있다. 2003년 4.4명(도시 기준)이던 베트남의 평균 가족 구성원 수는 2015년 3.4명으로 크게 떨어졌다. 3대가 함께 사는 ‘워킹맘’ 가정의 모습을 통해 변화의 한가운데 놓인 베트남 사회에서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지 들여다 봤다.
호앙 티 낌 지우(31), 나는 두 살, 다섯 살짜리 두 딸의 엄마이자 여행가이드로 일하는 한 남자(38)의 아내이다. 동네에서 ‘깐씨네’ 라 부르는 집안의 맏며느리이기도 하다. 호찌민 시내에 있는 두뇌개발교육 업체에서 일해 워킹맘이란 다른 이름도 있다. 6년 전 결혼해 남편과 독립해 살았지만 아이를 낳으면서 시아버지(짠 꽁 깐ㆍ63) 집으로 들어왔다. 시댁 식구들이 36년 동안 거주한 이곳은 우리 가족이 이사하면서 리모델링 공사를 했다. 1층엔 오토바이 주차장과 거실, 부엌이, 2,3층엔 침실이 자리를 잡았다. 좁고(4m) 깊고(16m) 높은(3층), 베트남 단독주택의 특성을 고루 갖춘 가옥이다.
합가(合家)를 결정했을 때 친구들은 의아해 했다. “돈 잘 버는 남편 덕분에 시부모한테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왜 ‘시월드’를 선택한 거야? 심지어 시누이(27)까지 있다는데….” 사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고향(중부 다낭)이 멀어 친정 식구들 도움을 기대하기는 힘든데다, 육아휴직 없이 출산휴가만 4개월(2년 전 6개월로 늘었다)인 베트남 육아 환경에서 워킹맘으로 살아가기는 만만치 않았다. 주변에선 3대가 모여 살기엔 비좁지 않느냐는 걱정도 하지만 일찌감치 시동생(37)이 지방에 취직하면서 독립을 했고, 지난해 결혼한 시누이도 분가한 덕분에 생활 여건은 한결 나아졌다.
육아와 가사는 여자 몫이라는 남편의 사고방식도 시댁행에 한몫 했다. 요즘 베트남 남자들이 바뀌고 있다지만 남편은 청소며 설거지 등 집안일과는 담을 쌓은 남자였다. “집안일은 여자 몫이지.” “내가 돈도 더 많이 벌잖아.” 해외 출장까지 잦았던 남편은 얄밉기만 했다. 그러나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고 손녀들까지 돌봐주시는 시어머니(61)를 생각하면 함께 살기를 잘한 것 같다. 시어머니는 내가 출근하고 없는 동안 능숙하게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는 ‘육아 프로’다. “너보다 더 많은 아이들(2남 1녀)을 키웠는데 당연한 거 아니냐”면서 힘든 내색도 안 하신다.
시어머니는 다음달 출산 예정인 시누이 아이까지 맡기로 하셨다. 중학교 독일어 교사로 일하는 당신의 딸이 육아 때문에 직장을 관두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신다. 나도 팍팍하게 구는 여느 시어머니 같았으면 합가는 꿈도 꾸지 않았을 것이다. 베트남 시어머니들도 이처럼 점점 합리적으로 변하고 있다. 특히 남부에서 그런 경향이 강한 듯하다. 대도시라 하더라도 하노이 같은 북부, 그 외 시골은 여전히 고부 갈등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는 않으리라 본다.
부드럽고 자상하지만 집안의 대소사를 결정할 때는 독재자(?)나 다름 없다. 가족 여행 등에 계획과 물품 구매 있어 사실상 전권을 행사하신다. 시아버지가 끼어들 공간은 전혀 없다. 가족간 불화가 일까 간혹 한두 마디 의견을 건넬 뿐 시어머니 결정을 그대로 따르는 편이다. 그만큼 시어머니도 미리 다른 식구들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 의사결정에 반영하신다.
시누이네는 오토바이로 15분 거리에 산다. 주말과 평일을 가리지 않고 자주 찾아와 저녁을 먹고 가는 날이 많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였다면 시누이도 친정을 제 집 드나들 듯하지 않았을 게다. “맞아요 언니, 제가 만화책에 빠져 있을 때에도 아버지는 싫은 소리 한번 안 하셨어요. 믿어주신 거죠.(시누이)” 서른 일곱 되도록 혼자 사는 시동생에게도 한 소리 했을 법 하지만, 지금까지 결혼 얘기는 입 밖에도 안 내신다. “작은 아들도 언젠가 좋은 사람을 만날 거야. 아들을 믿는데 부담을 줄 필요가 없지.(시아버지)”
가족사회에서 구성원끼리 서로의 역할을 인정하고 화목하게 살다 보니 찾는 손님도 많다. 1년에 한 차례씩 사돈끼리 상대 집을 찾아 어울리며 친구처럼 지내신다. 근처에 거주하는 내 외삼촌(55)도 시어머니를 ‘누나(찌이)’라 부르며 이따금 방문해 놀다 갈 정도다. 베트남에서 가족은 혈연만으로 맺어지는 게 아니다. 정(情)으로도 얼마든지 한 가족이 될 수 있다. 이것도 베트남 실용주의의 한 단면이라면 단면이겠다.
하지만 대를 잇는 것처럼 분명 혈연이 필요한 일도 있다. 때문에 집안 맏며느리로서 딸만 둘을 낳은 뒤 고민이 없지 않았다. 예전보다 심하지는 않지만 남아선호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 있고, 보기 좋게 손자를 한 명 안겨 드리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허나 그게 어디 내 맘대로 되는 일인가. 시아버지는 “얘야, 내가 죽으면 그걸로 끝이다. 그러니 대를 잇고 말고에 신경쓰지 말아라.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며 외려 나를 다독이신다. 두 딸이 들으면 서운해 할 수 있는 말을 왜 꺼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너희들이 할아버지 같은, 세상 변화를 읽을 줄 아는 시아버지와 연이 닿기를 바라는 바람으로 이해해 주면 고맙겠다.
호찌민=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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