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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다 함께 후회 없는 선택을

입력
2017.05.0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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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일어난 국정농단 사태는 우리 헌정사에서 일어난 가장 불행한 사건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한때 아시아의 민주주의 모범국으로 꼽히던 대한민국은 이 사태로 세계인의 눈앞에서 국격이 크게 실추되는 망신을 당해야 했다. 하지만 곧이어 일어난 시민들의 촛불시위와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은 바닥으로 실추된 국격을 끌어올리며 우리 국민들이 가진 드높은 민주주의 의식을 다시 전 세계에 과시했다. 그리고 두 달이 흘러, 이제 우리는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앞두고 있다.

대통령 탄핵 사태는 우리에게 명심해야 할 몇 가지 교훈을 남겨 주었다. 첫째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지도자를 잘못 뽑으면 국가에 어떤 불행이 닥치는지 뼈저리게 체험했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현재 경제적으로나 외교안보적으로나 우리가 처한 상황은 같은 실수를 다시 반복해도 좋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 때문에 이번 대선에서는 다른 것은 몰라도 투표하기 전에 후보자를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공직자에 대한 검증은 당연히 가혹할수록 좋다.

하지만 검증은 정당해야 한다. 사실 무엇이 검증이고, 무엇이 네거티브인지, 경계가 늘 분명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경계가 아무리 애매모호하다 해도 정당한 검증과 부당한 마타도어를 구별하는 대체적 기준은 존재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 상대 후보에게 합리적이지 않은 의심을 입증이나 반증이 불가능한 형태로 지속적·반복적으로 제기한다면, 대체로 마타도어로 봐도 무방하다. 검증의 생략도 문제지만, 검증을 빙자한 마타도어도 유권자의 선택을 크게 오도할 수가 있다. 지난 대선에서도 허위에 기초한 마타도어가 선거결과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 바 있다.

검증 못지않게 따져봐야 할 것이 후보자의 ‘비전’이다.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국가는 과거로 퇴행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좋은 시절이라도 과거는 결코 되돌아올 수 없다. 정치적 비전이 결여된 후보일수록 유권자들에게 미래의 비전 대신에 과거의 추억을 제시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 후보가 수십 년 동안 지겹게 들어온 철 지난 얘기를 반복한다면, 그 후보는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후보가 지도자가 되면 나라의 발목을 과거라는 족쇄에 묶어버릴 것이다. 과거의 향수가 미래의 비전을 대신할 수 없음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후보들의 공약을 꼼꼼히 따져보는 것 역시 중요하다. 공약이 후보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이른바 ‘정책선거’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 한 가지 평가할 만한 것은 공약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과거에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공약을 텅 빈 약속으로 간주하여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공약을 읽기 시작했다. TV를 통해 대선후보 토론이 유권자들 사이에 유례없이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도 공약에 대한 유권자들의 늘어난 관심의 결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선거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투표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다. 투표율이 낮을 경우 특정 연령이나 지역이 국가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과도하게 대표되는 일이 발생한다. 그렇게 탄생한 정권은 출범하자마자 곧바로 ‘대표성’의 문제를 안게 된다. 국민 다수가 아니라 열성적 소수의 지지로 당선된 지도자는 부족한 대표성 때문에 국정을 제대로 운영해 나갈 수가 없다. 대통령 탄핵으로 보수층이 표심이 향할 곳이 없어졌지만, 그렇다고 투표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최선이 아니라면 차악이라도 뽑는 것이 투표를 포기하는 것보다는 국가의 안정을 위해 백번 낫다.

대한민국 호는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새 선장을 뽑는 이번 선거에 앞으로 5년 간 나라의 장래가 걸려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표를 던지기 전에 모두 마음속으로 이 작은 질문을 던졌으면 한다. 선택의 기준은 혐오의 감정이 아니라 차가운 이성이어야 한다. 선거는 인기투표가 아니라, 그 결과가 우리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국가적 불행 뒤에 치러지는 선거. 적어도 이번 선거만은 그 누구를 찍든 모두에게 후회 없는 선택이 되기를 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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