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스턴은 코란도와 무쏘에 이은 쌍용자동차의 세 번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다. 세상에 태어나지 못할 위기를 이겨내 탄생한 강한 생명력을 가진 차이기도 하다.
2001년 8월 30일, 쌍용차는 서울 힐튼호텔에서 렉스턴 신차발표회를 열었다. 97년 체어맨을 출시한 이후 4년 만에 선보인 신차였다. 프로젝트명은 Y200.
렉스턴은 국내에 불어온 SUV 바람을 타고 쌍용차가 야심차게 준비한 대형 SUV였다. 개발 초기에는 무쏘 후속 모델로 시작했지만 무쏘가 기대이상의 인기를 이어가자 무쏘 위급으로 포지셔닝을 변경해 대형 SUV로 완성했다.
SUV를 지프형 자동차로 부르며 거친 오프로드에서 막 타는 차로 여기던 시절, 렉스턴은 세련된 디자인에 고급 SUV임을 강조하며 등장했다. 수입차 문턱이 높던 시절이어서 고급 SUV에 목마른 소비자들은 렉스턴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디자인은 쌍용차의 자문을 맡았던 영국 RCA의 켄 그린리 교수와, 쥬지아로의 이탈디자인이 참여해 완성했다. 판매가격은 2,553만원에서 3,318만원으로 비싼 편이었다.
엔진은 무쏘에 달았던 2.9리터 디젤엔진을 그대로 사용했다. 공차중량(1,950kg)은 2톤에 가까웠지만 인터쿨러 터보 디젤엔진의 최고출력은 120마력에 불과했다. 필요할 때 사륜구동을 택할 수 있는 파트 타임 4WD 시스템을 적용했다. 최고시속은 152km. 그 해 11월에는 220마력의 가솔린 3.2엔진을 얹은 모델을 추가했고 2.9 디젤에 사륜구동 기능을 뺀 모델을 2년 후에 다시 보강하는 등 라인업을 넓혀갔다. 처음 이 차를 시승할 때 차는 무겁고 힘은 부족해 출발할 때 반응이 느려 답답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고속주행에서는 탁월한 주행안정감을 보였다.
7인승으로 제작된 렉스턴은 매끈하고 현대적인 디자인에 흡음재를 많이 사용해 디젤차의 약점인 소음과 진동을 완화시켜 고급SUV의 면모를 확보했다. 트렁크 문을 열지 않아도 짐을 넣고 꺼낼 수 있는 플립형 리어 글래스도 도입했다.
모두가 알 듯 쌍용차의 운명은 기구했다. 쌍용차가 Y200 개발에 나선 건 1996년. 하지만 98년 대우차로 인수합병 되면서 개발 프로젝트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99년에 겨우 시작차 60여대를 만들 수 있었지만 그해 11월 대우가 자금사정을 이유로 투자를 중단하면서 개발은 중단되고 만다.
2000년 2월 쌍용차는 대우와 분리된다. 그에 앞서 연구소 조직이 먼저 분리돼 쌍용차로 복귀하면서 Y200 프로젝트는 재가동된다.
렉스턴이 출시됐던 2001년, 워크아웃 상태였던 쌍용차는 상반기 영업이익 847억 원으로 10년 만에 흑자를 기록했다. 창사 이후 최대의 실적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렉스턴을 출시한 쌍용차에는 의욕과 활기가 넘쳤다.
렉스턴의 브랜드 슬로건은 ‘대한민국 1%’였다. 상위 1% 고객을 대상으로 만든 최고급 SUV라는 의미다. 소진관 당시 쌍용차 사장은 신차발표회에서 “대표성ㆍ희소성ㆍ사회적 가치라는 뜻이 담긴 ‘대한민국 1%-렉스턴’이라는 공격적인 브랜드 슬로건을 채택했다”며 “승용차를 포함한 전체 자동차시장에서 1%의 대표성과 가치를 고객에게 제공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슬로건에 걸맞게 가격도 비쌌다. 렉스턴 덕분에 경쟁사들이 가격 인상의 부담을 덜 수 있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렉스턴 출시를 전후해 국내 SUV 시장에는 다양한 신차들이 쏟아진다. 현대차가 싼타페를 2000년 6월에, 테라칸을 2001년 2월에 각각 출시했고, 기아차 역시 2002년 2월에 쏘렌토를 출시한다.
쌍용차는 2006년 3월 성능 및 디자인을 변경한 렉스턴Ⅱ를 출시한다. 하지만 정부는 판매가 급증하는 SUV에 대해 승용차 수준으로 세금 올리기에 나섰고 경유가격도 오르는 등 상황은 좋지 않았다. 3세대 렉스턴 W는 2012년 5월 부산모터쇼에서 모습을 드러냈지만 판매는 지지부진했다. 렉스턴은 지금까지 약 37만대가 팔렸는데 이중 약 22만대가 1세대 모델이다.
쌍용차는 지난달 25일 ‘G4 렉스턴’을 공식 출시하고 본격 판매에 들어갔다. 렉스턴이 처음 세상에 나온 지 16년 만에 다시 선보이는 4세대 렉스턴이다. 위기 속에 태어나지도 못할 차가 오랜 세월을 견뎌 다시 바통을 이어받는 새 차에 이름을 물려주고 있다. 명줄이 참으로 긴 차다.
오토다이어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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