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나 연둣빛이다. 한국관광공사가 5월에 가 볼만한 곳으로 운치 있는 드라이브 코스를 발표했다. 가족나들이가 많은 철이라 아이들과 들를만한 관광지도 포함했다. 어디를 가든 도로 정체를 피할 수 없겠지만, 조금은 덜 붐비는 코스를 골랐다.
▦해안 비경 품은 환상의 드라이브, 강릉 헌화로
짙푸른 바다 위로 5월의 햇살이 눈부시다. 한쪽은 아찔한 해안 절벽, 반대 쪽은 탁 트인 바다를 끼고 달린다. 지난해 인기 드라마 ‘시그널’ 최종회에 소개되기도 했다.
헌화로는 강릉 옥계면 금진해변에서 북으로 심곡항을 거쳐 정동진항까지 이어진다. 금진해변~심곡항 구간은 해안도로이고, 심곡항~정동진항 구간은 산등성이를 넘는다. ‘헌화로’는 삼국유사의 ‘헌화가’ 배경이 이곳 풍경과 유사해서 붙인 이름이다. 신라시대 강릉태수로 부임하는 순정공의 아내 수로부인에게 노인이 낭떠러지의 꽃을 따다 바치며 불렀다는 노래다.
금진해변은 동해고속도로 옥계IC에서 5분 거리로 주변에 주차 공간이 넉넉한데다 전망대도 갖추고 있다. 길이 900m의 백사장은 조용하고 아늑하다. 경포나 정동진처럼 북적이지 않는다. 몇 해 전부터는 서퍼들이 모여들어 서핑 스쿨과 숙소, 카페 등이 생겼다.
이곳에서 심곡항에 이르는 구간은 헌화로의 하이라이트다. 해변도로 난간 높이가 70cm에 불과해 차 안에서 바다가 만져질 듯 보인다. 파란 하늘과 웅장한 해안 절벽, 쪽빛 바다가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2km 남짓 짧은 거리여서 금진항이나 심곡항에 차를 세우고 걷는 것도 괜찮다.
심곡항은 한국전쟁 당시 전쟁이 난 줄도 몰랐을 만큼 오지였다. 헌화로가 개설되면서 주목 받았고, 지난해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이 열리며 새로운 명소로 떠올랐다. 바다부채길은 아쉽게도 5월 현재 정비 작업으로 폐쇄 중이며, 공사가 끝나는 6월에 개방한다.
심곡에서 정동진항 구간은 내륙 도로다. 드라마 ‘모래시계’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있지만 정동진역은 지금도 연인들의 데이트와 친구들의 우정 여행 코스로 사랑 받는다. 눈부신 백사장과 모래시계공원이 하나로 연결돼 있어 둘러보기 편하다.
정동진에서 안인항까지도 해변도로가 이어지고 조금 더 올라가면 커피거리로 유명한 안목해변이다. 그 경로에 위치한 하슬라아트월드와 강릉통일공원까지 일정에 넣으면 더욱 알차게 즐길 수 있다. 하슬라아트월드는 2003년 문을 연 복합문화예술 공간이다. 바다를 바라보는 조각공원과 산책길, 카페, 전망대, 호텔 등으로 구성돼 있다. 강릉통일공원은 1996년 좌초한 북한 잠수함과 육해공군의 군사 장비를 모은 안보 전시공원이다. 산과 바다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곳에 자리 잡았다.
●헌화로 코스 잡기 : 금진해변~심곡항~정동진항~하슬라아트월드~강릉통일공원~안인해변~안목해변(강릉커피거리)
▦하늘과 맞닿은 길, 정선 만항재
만항재는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 혈동, 영월군 상동읍이 경계를 이루는 고개다. 해발 1,330m로 포장도로 가운데 가장 높다. 남한에서 6번째로 높은 함백산(1,573m) 바로 아래로, ‘하늘 아래 첫 고갯길’이란 별칭처럼 고원 드라이브 코스의 정수로 꼽힌다.
만항재 코스는 정선 고한의 상갈래교차로와 태백 화방재(어평재)를 잇는 414번 지방도다. 고갯마루를 기준으로 고한과 태백으로 약 8km씩 이어진다. 가끔 360°로 휘도는 구절양장에 탄성이 나온다. 고한에서 오를 때는 낙엽송 군락이 근사하고, 내려갈 때는 겹겹이 이어진 태백산 물결을 타고 흐르는 느낌이다.
만항재는 온갖 야생화가 피고 지는 ‘천상의 화원’이다. 낮뿐만 아니다. 한밤 드라이브에서는 은하수를 만나고, 새벽 길에선 짙은 안개가 몽환적이다. 주변에 볼거리도 풍성하다. 길이 시작되는 상갈래교차로부터 삼탄아트마인과 정암사, 만항야생화마을, 만항야생화공원 등이 줄을 잇는다.
삼탄아트마인은 2001년 폐광한 삼척탄좌를 활용한 문화공간이다. 만항재가 20여 년 전까지 석탄을 실어 나른 길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하는 곳이다. 산 중턱에 우뚝 솟은 수갱 타워는 광부와 석탄을 실어 나르던 승강 시설로, 삼탄아트마인의 심장 같은 곳이다. 짙은 회색 레일 위에 붉은 꽃 3송이를 설치해 강렬한 인상을 준다. 드라마 ‘태앙의 후예’를 촬영한 마인갤러리4와 광차와 인차, 버스 등을 전시한 야외 공간도 눈에 띈다. 광부들의 고단한 삶이 구불구불한 만항재를 따라 이야기로 흐르는 느낌이다.
정암사는 삼탄아트마인 맞은편이다. 국내 5대 적멸보궁 가운데 하나로, 신라시대(645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찾는 이가 적고 규모가 작아, 경내가 고요하다. 눈여겨볼 곳은 적멸궁과 수마노탑. 적멸궁은 산 중턱에 위치한 수마노탑에 불공을 드리는 공간이다. 수마노탑의 지붕 네 귀퉁이에 달린 풍경 소리가 일품이다.
만항야생화마을은 인근 광업소에서 채탄을 시작하면서 규모가 커진 곳이다. 도로변 담마다 야생화가 그려졌고, 마을 한쪽에서 야생화를 전시·판매한다. 만항재 정상 푯돌을 기준으로 왼쪽은 ‘하늘숲공원’, 오른쪽은 ‘천상의 화원’이다. 5월 낙엽송이 우거진 숲에는 큰앵초와 꿩의바람꽃, 한계령풀 등이 핀다. 만항재의 꽃은 7~8월에 절정을 맞는다.
조금 욕심을 내면 함백산에도 오를 만하다. 태백선수촌 부근 주차장에서 임도를 따라 1km를 걸으면 된다. 산불방지를 위해 15일까지 입산을 통제하고 있다.
●만항재 코스 잡기 : 상갈래교차로~삼탄아트마인~정암사~만항재~태백선수촌(함백산 등산할 경우)~만항재~화방재교차로
금강 상류 호젓한 드라이브, 금산 방우리~적벽강
금산 방우리와 적벽강을 잇는 길은 금강 물줄기와 동행한다. 찻길이 물길에 막혀 충남 금산과 전북 무주를 넘나드는 독특한 코스로 금강을 가로지른 다리를 6차례나 건넌다.
금산의 오지 마을인 부리면 방우리는 ‘육지의 외딴섬’으로 불린다. 금산 끝자락에 방울처럼 매달려 방우리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자동차로는 전북 무주를 거쳐야 들어갈 수 있다. 마을 앞은 금강이, 뒤는 산줄기로 막혀있기 때문이다. 무주읍에서 내도리 앞섬다리(내도교)를 지나 구불구불한 강변길을 따라 5km 정도 달리면 방우리에 닿는다.
대중교통도 제대로 없는 조그마한 마을은 금강 상류의 절경을 숨겨두었다. 화려한 절벽과 고요한 강물이 묘하게 어우러진 곳이다. 마을에는 다닥다닥 붙은 아담한 밭 사이로 흙담집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반딧불이가 서식하고 한가롭게 물놀이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입소문을 듣고 찾는 청정 지역이다.
방우리에는 지금 20여 가구가 남았다. 마을 가운데 경로당이 있고, 샛길 따라 삼밭을 넘어서면 강을 오가는 거룻배가 한가롭다. 그래도 10여 년 전과 비교하면 조금씩 변하고 있다. 강둑에 아스팔트가 깔렸고, 외지인이 정착한 2층 양옥도 들어섰다. 내후년이면 방우리에서 수통리까지 도로가 이어질 예정이다. ‘육지의 외딴섬’ 방우리를 만날 시간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
방우리를 거친 강줄기는 무주를 거쳐 다시 금산 수통리 적벽강과 이어진다. 물길로는 가깝지만 걸어서는 산을 넘어야 닿고, 자동차 길로는 1시간 정도 걸린다. 방우리에서 무주로 되돌아 나와 37번 국도를 달리다 601번 지방도로로 강변을 따라가면 수통리로 연결된다.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는 수통교와 적벽교를 넘어서면 그제야 적벽강이 자태를 드러낸다. 산을 휘도는 강줄기가 육중한 암산으로 둘러싸여 붉은빛을 띠는 곳이다. 수통리 적벽강은 높이 30m 기암절벽 아래 고요한 수면과 자갈밭이 넉넉하다. 양각산(566m) 자락과 연결된 3개의 기암절벽이 금강과 어우러져 경관이 수려하고 맑은 물에 사는 쉬리, 참마자, 꺽지 등이 헤엄치는 민물고기 박물관이기도 하다. 적벽강 맞은편에는 오토캠핑장이 조성돼 있어 자연을 벗 삼아 하룻밤 머물 수 있다.
금산 여행 때는 금산인삼약령시장도 들를 만하다. 희귀한 약재 구경에 삼계탕, 인삼튀김, 어죽까지 맛보면 금산 여행이 넉넉하게 마무리된다.
●방우리~적벽강 코스 잡기 : 금산 부리면 방우리~무주 당산교차로(19번 국도)~가옥교차로(37번 국도)~금산 양곡사거리(601번 지방도)~적벽강~금산인삼약령시장
▦고즈넉한 봄 정취 88번 지방도 춘양~영월 드라이브
경북 봉화 춘양부터 강원 영월까지 이어지는 88번 지방도는 천년 고찰, 수목원, 박물관 등을 지나 아이도 좋아하고 어른도 즐겁다. 산모롱이를 굽이도는 길은 때로 강과 만나 찬란한 봄 풍경을 빚어낸다.
드라이브의 시작은 춘양면에 자리한 봉화 만산고택이다. 조선 후기 문신인 만산 강용이 고종15년(1878)에 지었다. 대한제국의 통정대부와 중추원 의관을 역임한 만산은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인물이다. 만산고택은 전형적인 사대부 집안의 가옥 구조를 보여준다. 11칸이나 되는 행랑채 중앙에 솟을대문이 위엄 있다. 사랑채으 ‘만산(晩山)’이라는 편액은 대원군의 친필이고, 우진각의 ‘한묵청연(翰墨淸緣)’이라는 편액은 ‘글로 맺은 좋은 인연’이라는 뜻인데, 영친왕이 8세 때 쓴 글씨라니 놀랍다.
만산고택에서 10여 분 거리에는 각화사가 있다. 신라 신문왕6년(686)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아침 안개가 울창한 금강송 주위로 스멀스멀 밀려들 때면 선계에 들어온 듯하다. 절 앞마당까지 차가 올라가기 때문에 부담 없이 찾아볼 만하다. 최근 임시 개장한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도 인근이다. 미래 산림자원을 보존할 종자 저장고와 호랑이 숲, 백두대간 자생식물원 등 26개 주제로 조성되었다. 규모는 여의도 면적의 18배에 달한다. 수목원 홈페이지에서 예약 후 방문해야 한다.
수목원에서 북쪽으로 계속 달려 우구치재를 지나면 영월 김삿갓면이다. 영월은 곳곳에 박물관이 있어 아이를 동반한 여행자라면 박물관을 중심으로 일정을 짜도 좋다. 내리계곡이 끝나는 지점의 내리마을에는 호안다구박물관이 있다. 폐교를 개조한 박물관에 중국을 비롯한 각국의 진귀한 다구(茶具)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 길에서 또 권하고 싶은 박물관은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이다. 조각과 그림, 공예품 등을 통해 아프리카의 토착 문화와 전통 예술을 엿보는 공간이다. 목조각, 가면, 인물상, 상아 작품, 생활용품, 장신구 등 아프리카의 다채로운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와석리의 김삿갓유적지는 어른들에게 흥미로운 곳이다. 풍자와 해학의 대가인 방랑시인 김병연의 노래비와 시비 등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다. 가는 길목에 위치한 조선민화박물관은 서민의 삶이 녹아 든 정감 넘치는 그림을 전시하고, 민화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이라면 단종 유배지인 청령포와 그의 묘지인 장릉 등도 여정에 묶을 수 있다.
●춘양~영월 코스 잡기 : 춘양 만산고택~각화사~국립백두대간수목원~호안다구박물관~김삿갓유적지~영월아프리카박물관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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