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독거노인 위한 ‘밥퍼’
29년 만에 1000만 그릇 돌파
운동 처음 시작한 최일도 목사
“새 정부 출범 땐 북한도 갈 것”
“1,000만 그릇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한 분을 위한 한 그릇’에서 시작했을 뿐입니다. 그 정신을 절대 잃지 않겠습니다.”
‘밥퍼 나눔 운동’으로 유명한 다일공동체 이사장 최일도 목사는 2일 한국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1988년 최 목사가 시작한 밥퍼 운동으로 불우이웃들에게 전달된 식사가 이날로 1,000만 그릇을 넘어섰다. 햇수로 30년 만에 이뤄 낸 성과다.
지금이야 노숙인 등 굶주린 이웃들을 위한 봉사라는 점이 널리 알려졌지만, 초창기엔 괜한 의심 꽤나 받았다. “노숙자들 한데 다 모아 놓으면 ‘남조선에 거지 많다’는 선전에 악용되니 김일성 좋은 일만 시킨다는 소리, 정보과 형사들에게 엄청 들었습니다. 허허허.”
최 목사가 이 운동을 시작한 건 우연이었다. “날짜도 안 잊어요. 1988년 11월 11일. 청량리 역 앞을 지나는데 나흘을 굶다 쓰러진 함경도 출신 할아버지가 계셔서 설렁탕을 사 드렸습니다. 그때 전 독일 유학까지 예정된 신학생이었는데 ‘이런 분들을 놔두고 무슨 유학인가’ 하는 생각에 모두 접었습니다.”
최 목사는 그 다음 날부터 청량리역 앞에서 밥을 푸기 시작했다. 밥을 받아 소중한 한 끼를 해결하는 이들이 순식간에 수십 명, 수백 명을 넘어섰다. 지금은 하루 1,000명 분의 식사를 준비한다. 자원봉사자만 해도 지금까지 연인원 50만명에 이른다.
1,000만그릇 돌파 기념으로 이날 청량리 밥퍼나눔운동본부에서는 ‘오병이어(五餠二魚)’ 행사가 열렸다. 행사장 맨 앞자리에는 이차술(61) 할아버지, 이종순(76) 할머니 같은 분들을 모셨다. 이 할아버지는 노숙인 생활 17년 가운데 15년을 밥퍼 운동에 신세를 졌다. 밥퍼 운동의 자원봉사자로 변신한 이 할아버지의 지금 목표는 15년의 두 배인 30년 동안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 할머니는 어릴 적 버림받아 출생신고조차 없었다. 지속적인 노력 끝에 이제서야 주민등록증이 나왔다. 이 할머니는 이번 대선에서 생애 첫 투표권을 행사한다. 최 목사는 “다시 서기에 성공하신 이런 분들 덕분에 제가 지치지 않을 수 있다”며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한 분들”이라며 기뻐했다.
마냥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다. 봉사 시작 몇 해가 안 되어 마음의 위기가 닥쳐 왔다. “노숙인이 너무 아파서 병원에 업고 뛰어가면 안 받아 줘요. 제 등에 업힌 채로 죽은 사람들 많습니다. 그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이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구나, 연명하게 해 주는 것 빼곤 내가 이런다고 무슨 도움이 되는가, 심각한 회의에 휩싸였습니다. 잠깐이나마 몰래 도망가기도 했습니다.” 이 때 괴로움은 1992년 병원 설립을 위한 모금운동으로, 2002년 노숙인을 위한 무료병원 다일천사병원 설립으로 이어졌다.
지금 목표 가운데 하나는 북한 돕기 운동이다. “밥퍼 운동은 지금 중국, 베트남, 인도 등 세계 10개국 17개 분원으로 뻗어 나갔습니다. 정작 가장 가까운 북한은 못 갔습니다. 새 정부 출범 이후에는 무조건 북한 동포들 밥 먹이기 운동부터 벌일 겁니다. 구호도 정해 뒀습니다. ‘밥이 평화다’ ‘밥부터 나누세’, 어떻습니까.”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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