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해산 촉발 반정부 시위 확산
거리 충돌 최악의 상황으로
과거 차베스 제헌의회 연상
야당 “시민 속이지 말라” 맹비난

베네수엘라 대법원의 ‘의회 해산’ 판결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가 1일(현지시간)로 한 달째를 맞은 가운데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과 야권 등 반정부 단체의 거리 충돌이 최악의 상황으로 격화하고 있다. 한 달여 동안 600만명 이상이 참여한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면서 수도 카라카스 등에선 최소 29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부상하는 참사가 이어지는 등 베네수엘라 헌정 위기가 극단으로 치닫는 모양새이다.
마두로 대통령은 이날 노동절을 맞아 카라카스 시내에서 열린 대규모 지지집회에 참석해 반정부 세력을 제압하고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한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새로운 민중의회를 수립하고 새 헌법을 논의해 제정하자는 제안이다. 그는 “내전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헌법에 규정된 제헌의회 수립 조항을 이용해 “파시스트 쿠데타 세력을 꺾고 평화롭게 혼란을 수습, 진정한 시민들이 참여하는 새 의회를 수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선거관리위원회가 2일부터 관련 준비 작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두로 대통령의 개헌의회 제안은 1999년 전임 우고 차베스가 집권하자마자 친정부 성향의 제헌의회(ANC)를 구성해 헌법을 개정한 것을 연상케 한다. 이 때문에 야권 선거연합인 민주연합원탁회의(MUD) 진영은 마두로 대통령의 개헌 제안을 “친위 쿠데타”라며 맹렬히 비난했다. 훌리오 보르헤스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은 이날 저녁 “쿠데타나 다름없는 행위를 하면서 베네수엘라 시민들을 속이려 하고 있다”며 거리를 장악하고 3일엔 대규모 집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민주연합 참여정당 중 하나인 정의제일당의 엔리케 카프릴레스 대표는 “거리로 나가자. 이 광기를 끝내자”고 트위터에 적었다. 카라카스의 야당 지지자들은 창가에서 빈 주전자와 프라이팬을 두드리는 전통적인 시위 수법으로 기세를 끌어올렸다.
베네수엘라에서 2014년부터 시작된 반(反) 마두로 정권 시위는 이듬해 말 민주연합이 총선 승리를 거두고 국민소환투표 등 제도권 내 투쟁을 시도하면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3월 29일 대법원이 의회 해산 판결을 내린 것을 계기로 시위대 규모가 급격히 커졌다. 지난달 19일에는 ‘모든 행진의 어머니’라 불리는 대규모 반정부집회가 열려 전국적으로 600만명이 모였다. 시위대와 경찰, 친정부 무장집단 ‘콜렉티보(colectivo)’의 충돌로 4월 한 달 동안 전국 거리에서 5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할 정도였다.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마두로 정권에 대한 지지율도 급락했다. 과거 차베스 대통령의 핵심 지지세력이었던 노동자와 도심 저소득층조차 25%에 이르는 실업률, 치솟는 물가와 식량부족, 망가진 치안시스템 때문에 반정부 진영으로 돌아서고 있다. 다만 마두로 정권이 군과 경찰을 비롯한 대부분 공권력을 장악했고 열광적인 지지자 집단도 있는 터라 집회만으로 정권을 뒤집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아메리칸대학 라틴아메리카연구소의 마이클 매카시 연구원은 이날 워싱턴포스트 기고를 통해 “의회가 무력화된 야권 입장에서는 집회의 세를 불려나가면서 미주기구(OAS) 등 국제사회의 지지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평가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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