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는 첫 시행에 합격점
산하기관 직원들은 일감 몰려
조기 퇴근커녕 연장근무 일쑤
지난달 28일 저녁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는 한산한 모습이었습니다. 평소라면 야근으로 밤늦도록 불을 밝혔겠지만 매월 정해진 날 2시간 일찍 퇴근하는 조기퇴근제가 시행되며 본부 근무자 840여명 중 85%가 오후 5시 이전 퇴근했기 때문입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날’로 불리는 이 제도는 지난 2월 내수 활성화 대책으로 기재부가 직접 내놓은 방안입니다. 월~목요일 2시간 초과 근무를 하고, 금요일 오후 4시 퇴근을 유도해 여가를 늘리고 내수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취지죠. 지난달 14일 인사혁신처를 시작으로 문화체육관광부, 법제처, 중소기업청 등이 조기퇴근제에 동참했습니다.
제도를 창안한 기재부 내부에선 첫 시행에 ‘합격점’을 주는 분위기입니다. 비상 인력을 제외하고는 전체 실국이 동참한데다 여론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죠. 특히 간부들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제실 소속 A과장은 1일 “모처럼 평일에 아들과 대전에서 야구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다”며 만족해했습니다. 또 다른 B과장은 “일찌감치 상경해 지인들과 불금(불타는 금요일)을 보낼 수도 있고 가족들과 2박 3일 여행도 가능하니 실제로 내수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위직 공무원들의 반응은 영 딴판입니다. 일을 시키는 입장과 일감을 받는 처지가 다른 탓입니다. 경제부처 대변인실의 C주무관은 “중앙부처는 1년 간 현안이 없는 날이 거의 없다”며 “국회, 언론까지 상대해야 하는 만큼 조기 퇴근은커녕 연장 근무에 대한 초과 수당을 제대로 못 받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토로했습니다. 공무원들만의 ‘특혜’라는 지적과 함께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경제부처 산하기관의 직원 D씨는 “부처에서 금요일 퇴근 직전에 일거리를 던져주거나 장관, 실ㆍ국장 말 한마디에 밤을 새야 하는 게 우리 처지”라고 한탄했습니다.
벌써 관가에선 결국 ‘생색 내기’에 그칠 것이란 이야기도 나옵니다. 대선 이후 유명무실해질 공산도 큽니다. 내수활성화와 일ㆍ가정 양립이란 제도의 취지를 살릴 순 없을까요. 문형구 고려대 교수는 “고위ㆍ하위직을 막론하고 당사자들의 의사를 취합해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그래야 민간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한 유인책도 도출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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